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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종이책이 없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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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종이책이 없어진다고?

입력
2010.10.2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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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 어댑터는 늘 외롭고, 그 심리는 분명 헛헛하다. 첨단은 순간순간 새로 기록되기에 그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상자를 갖고 태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짜 현대인을 '신상' 소비에 몰두하는 한낱 스노비스트에서 우리 시대 새로운 현자로 만든 것은 그를 불운에 빠뜨린 문명의 또 다른 첨단,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시대로 돌입한 사이버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거기서 그는 시간을 뭉쳐 내면에서 숙성한 지혜 덕분이 아니라, 문명의 새로운 산물에 대한 과감한 헌신 탓에 모든 이의 귀감이 된다. 그의 뇌리에서조차 조만간 잊혀 버릴 '신상'에 대한 공허한 찬양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빛나는 계시로 둔갑하고, 재바른 감각과 막강한 구매력에 의존하는 선언적 확신을 통해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 교주로 등극한다.

최근 종이책이 5년 안에 소멸할 것이라 선언한 MIT 교수 네그로폰테도 교주의 한 사람이다. 과거에도 '종이책 10년 이내 소멸설'로 소동을 벌인 적이 있는 그는 킨들의 대량보급에 따라 전자책 판매량이 급증하고 아이패드가 열풍을 일으키자 다시 예언에 나섰다. 그 신도들은 음악시장에서 LP나 CD가 mp3로 대체되었듯, 조만간 종이책도 전자책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에 몹시 열중한다. 이러한 열광에는 합리적 이유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곡을 들을 수 있는 편리성, 과거엔 상상조차 못할 파격적 가격 할인 등 mp3 혁명이 가져온 변화 말이다.

그러나 책과 음악은 다르다. 음악은 전자화하기 이전에도 이미 음반 자체로는 즐길 수 없고 전축이나 CD플레이어 등 별도의 재생 도구가 필요했다. 또 연주회에 가거나 라디오 등을 통해 거기 담긴 곡들을 들을 수도 있고, 노래방 등에서 직접 따라 부를 수도 있었다. 요컨대 음반과 음악은 늘 분리된 상태로 존재해 왔다. 그런 탓에 음악 비즈니스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편리한 도구가 나올 때마다 늘 혁명적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 디바이스 대체 현상이 일어났다.

책은 단지 도구가 아니다. 책은 담긴 내용과 분리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덕분에 책은 눈만 있으면 별도의 재생 도구 없이도 언제든지 내용을 즐길 수 있다. 책은 그 자체가 예술이고, 정보이며, 즐길 거리인 것이다. 따라서 킨들 같은 재생도구를 갖는 것은 오히려 책 내용을 즐기는 데 불편하기까지 하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전자업계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고 얼리 어댑터들은 새로운 도구를 극찬했다. 하지만 열풍이 사그라질 무렵이 되면 '신상'은 늘 책상서랍 한쪽에 애물단지로 남아 가슴을 쓰리게 했을 뿐이다.

책의 전자화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5년이 채 안 걸릴 수도,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 현재 한 사람이 한 해에 읽고 쓰는 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수준이다. 대부분이 전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면 책 역시 운명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쓰이는 전자문서들은 읽기와 듣기와 보기와 감상하기가 문서 하나에 결합된 혼종적 텍스트로 나타난다. 전자책도 아마 이런 형태로 얼리 어댑터들이 방정 떠는 것처럼 디바이스혁명에 따른 상호대체가 아니라, 콘텐츠 혁명에 따른 상호병치의 길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라디오와 TV가 공존하듯, 영화와 드라마가 공존하듯, 책과 전자책은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길로 접어들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콘텐츠에 대한 통찰력이 더욱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장은수 출판인·민음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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