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랑스 오브나 지음ㆍ윤인숙 옮김
현실문화 발행ㆍ336쪽ㆍ1만3,000원
“청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최악은 맨 처음, 혹은 매번 새 일자리마다 처음 나가는 날, 모두가 잠든 시각에 일어나, 과연 이번에는 어떤 데인가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장소를 찾아 어둠 속을 운전하고 가는 것이다. 떨쳐버릴 수 없는, 이 깊디깊은 피로감에 덧붙여지는 것은 공포라고 하면 좀 과장일 테고, 아마 괴로움쯤이리라. 결국 어딘가에 닿으리라는 희망과 기력에 기대 보지만, 목적지는 여전히 멀기만 한 것 같다.”(282쪽)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복지, 탄탄하게 구축된 노동자들의 연대, 톨레랑스로 상징되는 포용과 존중.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러나 과연 프랑스 사회의 하부를 이루는 이들의 삶의 진상은 어떨까.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 기자 출신으로 이라크,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 취재를 도맡아온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 플로랑스 오브나(49).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프랑스에서도 온통 위기라는 소리가 넘쳐나던 2009년 초, 그는 위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저임금, 비정규직 계층의 삶을 체험하기로 결심한다. 회사에는 소설을 쓰기 위해 모로코로 떠날 것이라는 소문을 낸 뒤 1년 간 무급휴직하고 그가 찾은 곳은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캉. 그는 갈색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안경을 끼는 등 신분을 위장한 채 구직 대열에 합류한다.
는 오브나가 6개월 간 경험한 ‘프랑스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르포다. 그가 관찰한 현실은 프랑스적인 낭만과는 결코 거리가 멀었다. 노동자를 받아주지 않는 집주인들, 관료주의적인 직업훈련센터 직원들,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직자들.
직장 경력이 없는 (것으로 위장한) 40대 후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건물 청소부, 호텔 야간근무자, 잡화상 판매원직뿐. 그나마 오브나에게 돌아온 자리는 악명 높은 위스트르앙 부두에서의 페리 객실 청소였다. 일을 시작한 지 15분도 되지 않아 무릎이 부풀고, 팔이 쑤시고, 온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육체적 고통도 괴로웠지만, 더 큰 충격은 사람들의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페리를 오르내리는 승객들에게 기운찬 목소리로 인사를 해도 그는 승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여러 곳의 청소 일을 전전한 끝에 그녀가 번 최고 수입은 한 달 고작 700유로(약 100만원) 정도였다.
스무 살에 불과하지만 페리 청소 외에는 다른 일을 생각도 않는 미미, 정부 보조금으로 의치를 넣기 위해 치통을 참으며 치과를 찾지 않는 마릴루. 꿈을 잃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동료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오브나의 묘사는 ‘위기’의 전세계적인 실상을 핍진하게 보여준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