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제에 장애인과 합동공연이 웬 말? 의미야 있겠지만 잘 할 수 있을까. 뭐 그렇게 어렵진 않겠지,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계원디자인예술대학 학생밴드 소리난사의 보컬 김다현씨)
‘너무 떨린다. 캠퍼스에서 대학생들과 공연을 같이 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아. 그간 단 한 번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공연해본 적이 없는데, 잘 할 수 있을까.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밴드 밀키웨이의 보컬 구수정씨)
29일 오후 경기 의왕시의 계원예대 내 우경예술관. 무대에 몸이 불편한 뇌성마비장애인들과 대학생이 함께 섰다. 뇌성마비장애인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 손 대신 발로 북을 두드렸고 불편한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드럼 채를 잡았다. 또 열 손가락 대신 여섯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리며, 멤버 조미옥(23)씨가 작사한 ‘꿈이 보일 거야’를 연주했다.
연주의 부족한 부분은 대학생 밴드가 메웠다. 뇌성마비장애인 밴드 ‘밀키웨이’(7명)와 계원예대 밴드 동아리 ‘소리난사’(4명)가 더불어 빚어낸 공연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장애인과 대학생이 한데 어우러져 펼치는 공연에 초점을 맞춘 대학축제(아이소리 페스티벌)는 계원예대 총학생회가 주최하고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후원했다. 걸그룹 등 연예인 초청공연이나 기업홍보가 주를 이루는 최근 대학축제와 비교하면 신선하고 의미 있는 시도다. 대학축제에 장애인이 직접 무대에 오른 건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다.
두 밴드는 공연을 위해 9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함께 맹연습했다. 처음에는 서로 삐걱댔다. 연습시간과 장소가 맞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실력 차이도 컸다. 소리난사의 보컬 김다현(20)씨는 “몸이 불편한 친구들을 위해 우리가 직접 복지관을 찾아가서 연습을 해야 했는데, 악기도 그렇고 가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려 연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밀키웨이의 보컬 구수정(25)씨도 “처음에는 낯가림도 심하고, 말도 제대로 못 붙였다”며 “연주하는 음악과 반주가 서로 다르고, 한 곡 연주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서로 다툰 적도 꽤 된단다.
하지만 만남이 늘어나면서 협연실력은 향상됐고, 사이도 좋아졌다. 소리난사의 베이스기타 이경상(20)씨는 “‘어렵고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말도 잘 통했고, 장난도 곧잘 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소리난사 드럼주자 이준혁(20)씨도 “매주 얼굴보고 연주하고, 간식 챙겨먹는 일도 친구들과 평범하게 노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밀키웨이에서 작은북을 연주한 송형배(20)씨는 “이제 경상이랑은 느릿한 말투까지 비슷해졌다”고 했다.
이날 연주는 서툴렀지만 따뜻함이 묻어났다. 김다현씨는 “언니(구수정)랑 처음으로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가슴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용솟음치는 기분이 들었다”며 “그간 장애인들과 말하기조차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들도 ‘나랑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했다.
소리난사의 리더 장현석(25)씨는 “사실 동아리 멤버끼리 할 때는 각자 파트만 잘하면 되는데, 이번 공연은 서로 맞춰주고 기다려주고 배워가면서 했다.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는 것 자체에 감동을 받았다”며 “음악을 포함한 예술에는 장애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얘기했다.
여섯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연주한 김예지(23)씨는 목소리가 떨렸다. “꿈이 현실이 됐어요. 비장애인들과 친구가 돼 연주를 하니 더 잘되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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