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에서 나팔꽃 콘서트를 마치고 여수로 향했다. 오랜만에 남도로 길을 나선 김에 여수 친구를 보고 싶어 '오백당'(五白堂)에서 하루 쉬다 오기로 했다. 오백당은 당주인 내 친구가 책 읽는 별채 이름이다. 친구가 그 별채를 구해놓고 이름을 지어달라기에, 친구의 다섯 형제분이 아흔 아홉까지 장수하라는 뜻을 선물했다.
가는 중에 친구는 몇 번이나 전화를 해 내가 어디쯤 왔는지를 확인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도착시간에 맞춰 회를 준비해야 신선하다는 것이다. 그건 내가 귀빈 친구라서가 아니라 미식가인 친구의 맛에 대한 멋이며 예의다. 그렇게 해서 싱싱함을 그대로 간직한 '횟감의 귀족어'라는 능성어 회를 난생 처음 만났다.
능성어는 농어목 바리과의 바닷물고기로 제주에서 최고로 대접받는 다금바리와 사촌이란다. 다금바리와 맛이 비슷하다보니 다금바리로 속여 팔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깊은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답게 등지느러미에 억센 가시가 솟아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생김새로 보아 기름질 줄 알았는데 회는 뜻밖에도 부드럽고 담백했다. 감칠맛도 뛰어났다. 여수에서는 회를 배달시키면 시시하게 접시에 담겨 오지 않는다. 큰 스티로폼 상자에 가득 담겨서 오는데 쉬지 않고 먹다보니 어느새 그 많은 양의 능성어 회가 바닥이 났다. 그렇게 먹어도 2%가 부족한 여수시 화양면의 가을밤이 깊어갔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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