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막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번 회의는 새로운 글로벌 금융질서의 방향과 그 실천적 방안들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본보는 서울 G20 정상회의의 이슈들을 점검하고 바람직한 국제금융시스템 구축을 위한 과제들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 연속인터뷰를 마련했다.
“한국은 G20이 신흥국 이슈를 의제로 다루도록 적극 노력한 투사(champion)였다.”
스베인 안드레센 금융안정위원회(FSBㆍFinancial Stability Board) 사무총장은 G20에서 금융개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낸 한국의 역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FSB는 각국 금융감독당국과 중앙은행 수장 등이 모여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새로운 금융규제의 기준을 논의하는 국제기구다.
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경주를 방문한 안드레센 총장은 ‘환율전쟁’의 해법을 찾느라 신경전을 벌였던 장관들과 달리 비교적 편안한 모습이었다. 경주 회의 전 G20 국가들이 이미 금융규제 분야 쟁점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뤘기 때문으로 보였다.
-G20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무엇인가.
“많은 이슈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미래의 강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G20의 정책 공조 역할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금융시스템을 강화하는 약속을 추인함으로써 금융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한국이 G8에 속하지 않는 국가로선 처음으로 G20 의장국을 맡았는데 그간 노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내가 참여한 모든 사안(금융규제 쪽을 의미)에서 한국이 매우 깊숙이 관여했다. 물론 G20 정상들의 최종 승인이 남아 있지만 좋은 성과도 얻었다. 한국이 G20 국가들이 협력을 유지하고 정해진 일정 안에 성과를 얻을 주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매우 잘 했다고 모두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또 G20 국가들이 신흥국 쪽에 좀더 초점을 맞추도록, 신흥국 이슈를 글로벌 시장의 의제로 만들기 위해 적극 나선 투사 역할을 했다.”
-글로벌 금융안전망(Global Financial Safety Net)과 국제금융기구 개혁 등 이른바 ‘코리아 이니셔티브’에 대한 생각은.
“금융안전망은 한국이 적극 밀었던 또 하나의 이슈였는데, 한번에 결론이 나기는 어렵지만 어떤 모멘텀이 됐다고 생각한다. 위기 시 IMF의 유동성 공급,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같은 것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하지만 위기 시를 대비한 보험성 기금에는 모럴 해저드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국제통화기금(IMF) 지분 배분 등 국제금융기구 개혁의 문제는 역사적 이유도 있고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G20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FSB를 통해 G20이 은행의 자본 및 유동성을 규제한 이른바 ‘바젤Ⅲ’에 합의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것만으로 새로운 금융위기를 막는 데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상업은행에 대한 규제여서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인 ‘섀도우 뱅킹 시스템’(투자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 구조화 투자회사(SIV) 등과 같이 중앙은행의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금융 시스템의 핵심은 은행 시스템이다. 섀도우 뱅킹 시스템은 은행 시스템 없이 독자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은행이 섀도우 뱅킹 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핵심인 은행시스템을 가장 먼저 다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바젤Ⅲ를 만들고 대마불사 문제를 다뤄 온 것이다. 또 우리는 이번에 규제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섀도우 뱅킹 시스템이 의존하고 있는 은행 시스템 및 신용평가기관의 정통성을 개선토록 했다. 섀도우 뱅킹 시스템은 다른 나라보다는 금융활동이 매우 활발한 미국과 같은 곳에서 비중이 크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번에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대형은행(SIFI)의 ‘대마불사’ 문제도 거론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지금보다 큰 은행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이미 4개 은행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중 인수합병(M&A)을 통해 더 큰 은행이 만들어지면 금융안정에 저해되지 않을까.
“사실 한국 상황은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SIFI를 문제 삼을 때 크기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은행의 크기가 중요하다는 증거도 많다. 너무 크면 관리비용도 커지고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SIFI 문제를 다룰 때는 크기뿐 아니라 얼마나 금융시스템과 상호 연관돼 있고 영향을 미치느냐가 중요하다.”
-G20 국가들이 은행세를 도입하려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각자 부과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영국은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말했는데 은행세가 금융안정을 위해 필요한가?
“개별 정부가 결정할 문제지만 금융안정의 관점으로 보면 은행에는 자본과 유동성이 매우 중요하다. 은행도 실수를 하고 금융시장은 예측 불가능하므로 쇼크가 있을 수 있는데, 이때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세를 부과하면 은행으로부터 자본이나 유동성을 확보할 돈을 가져다 정부 예산에 넘기는 것이어서 은행의 역량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일단 자본과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해 강한 은행을 만든 후에 은행세를 부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떤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 금융 규제와 감독도 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한국은 별도 기관(금융위, 금감원)이 감독과 규제를 맡고 있다. 둘 중 어떤 시스템이 나은지.
“쉽게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앙은행의 역할에서 은행 감독의 역할을 완전히 분리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스템 전체를 매우 넓게 보는 특징이 있다. 또 위기 때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려면 개별 은행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위기 때 누가 뭘 할 것이냐보다는 기관 간의 적극적인 공조가 중요하다.”
경주=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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