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논설위원실에 전해 온다는 우스개 같은 말이 있다고 들었다. "논설위원 됐는데, 기명 칼럼 딱 세 편 쓰고 났더니 더 이상 쓸 게 없더라"는 말이다. 대부분 현장 기자, 데스크 다 거치면서 이십여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한 사람들이 논설위원이 된다. 사실의 규명과 진실의 추구와 사회정의에 대한 이상을 품고 기자가 돼서,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정권은 몇 번이나 뒤집어지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분명한 주관을 형성했을 그들이, 왜 칼럼 세 번 쓰고 나니 더 이상 쓸 말이 없다는 걸까.
기자는 이 말의 뜻을 글 한 편 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신문 칼럼이라 해야 원고지 10장 안팎의 짧은 글이지만, 이십여년 이상 신문기사를 써온 전문가라 해도 자신의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할 팩트로 구성된 글 한 편 쓰는 데 그만큼 골머리를 앓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글이라는 걸 쓰는 행위에는 그런 엄혹성이 수반된다. 반대로 글쓰기의 그 괴로움에 대한 의식 없이 나온 글은, 쉽게 자주 많이 씌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한없이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표절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상반기 30만여부가 팔린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권비영의 소설 는 덕혜옹주의 평전을 쓴 일본인 저자가 자신의 책을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지난 6월 출간 이후 18만여부가 팔리며 역시 베스트셀러가 된 국내 대표적 작가 황석영의 강남 개발사를 다룬 장편소설 은 월간지 신동아 기자가 쓴 기사와 책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학작품의 표절 여부는 특히 판단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학계의 연구논문이나 언론의 보도기사와는 달리 문학에는 상상력이라는 결정적인 변수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황석영은 의 표절 의혹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에서 "신동아 2007년 6월호에 실린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 떠있는 각종 회상자료와 인터뷰 내용 등을 참조했습니다… 인물에 따라서 인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에 조명을 가하여 소설적 윤색을 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표절에 해당하는가는 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석영이 말한 '소설적 윤색'이 곧 상상력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는 표절 물의가 빚어진 데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필요하다면 참고자료를 에 밝히고, 이번 일이 창작자의 권한을 존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기자는 황석영의 말에서 '창작자의 권한'보다 '인터넷상에 떠있는 각종 …자료'라는 구절에 더 눈길이 간다. 바로 그곳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글쓰기의 엄혹성을 무너뜨리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전문가든 아니든 글을 쓰는 자에게 표절을 부추기는 진원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글이 널려 있다. 한두 번만 다리를 건너 베껴지다 보면 원작자도 출처도 원문도 사라지고 왜곡되는 유령 같은 글들이. 심지어 초등학생의 과제물 모범답안부터, 황석영 같은 큰 작가도 참조할 만한 자료 성격의 각종 글이 천국의 도서관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이다. 누구나 그것들을 긁어와 베껴서 혹은 적당히 가공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시대다. 문제는 그때 글쓰기의 엄혹성 혹은 괴로움이라는 윤리는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표절은 결국 윤리의 문제다.
공부라는 게 선인들의 글에 각주 하나씩 달아가는 작업이라는 말이 있지만, 문화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쌓아온 정신의 산에 글자 한 자 문장 하나 보태는 작업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한 자, 한 문장 제대로 쓰기가 참으로 괴로운 일인 것이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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