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고민이 깊어만 지고 있다. FOMC회의에서 ‘양적 완화(유동성 공급)’보따리를 어떻게 풀어놓느냐에 따라, 미국경제의 흐름과 환율전쟁의 향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대규모 양적 완화를 결정한다면 미국 내에선 경기회복의 든든한 후원자로 평가받겠지만, 글로벌 무대에선 경주 G20 재무장관회의를 통해 겨우 잠재운 환율전쟁의 불씨를 다시 일으키는 ‘전범’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상황. 반대결정을 내린다면 거꾸로 다른 나라의 찬사와 국내 시장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샌드위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난주 경주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에서 각국은 환율전쟁 확산방지를 위해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자제키로’ 합의한 상태. 하지만 미국이 양적 완화를 통해 계속 달러를 찍어 낸다면 달러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각국은 자국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시장개입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만약 경주합의까지 만든 상황에서, 버냉키 의장이 대대적인 양적 완화를 결정한다면 미국은 ‘두 얼굴의 행동’에 대한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스스로 경주합의를 무력화 시켰다는 국제여론의 화살을 면키 어렵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경주 회의를 전후로 “강한 달러를 원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각국은 이에 대해 ‘립서비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오히려 지난 15일 “추가 부양책의 규모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말한 버냉키 의장을 주시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선 3일 FOMC회의에서 양적 완화 결정이 나올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그 방법과 규모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Fed가 한꺼번에 대규모로 국채를 매입하기 보다는 매월 수백억~1,000억달러 가량의 국채를 사들이는 ‘단계적 양적 완화’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데니스 록하트 총재도 “매월 1,000억달러 정도의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규모에 대해선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1조달러, HSBC는 1조5,000억달러를 전망하고 있는데, 시장은 대체로 1조달러 수준을 점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내 고용사정 등을 감안하면 연준이 풀 달러는 총 2조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문제는 1조달러의 양적 완화는 꽤 대규모라는 점. 이 경우 달러가치는 더 떨어져 다른 나라들은 절상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결국 각국의 경쟁적 시장개입, 즉 환율전쟁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경우에 따라선 경주합의에서 사실상 위안화 절상을 받아들이며 큰 양보를 했던 중국도 다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달 11~12일 열릴 G20 서울 정상회의 분위기도 싸늘해질 것이다.
국내경기와 국제적 환율갈등 사이에서 결국 버냉키 의장도 모종의 절충안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즉 총 규모는 발표하지 않되 수개월 간 단계적으로 달러를 풀겠다는 수준으로 밝힐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것. 대신증권 나중혁 선임연구원은 “기존주택판매가 2달 연속 큰 폭으로 증가했고, 9월 이후 달러화가 다른 통화대비 벌써 10% 가량 절하되는 등 미국 내 경제상황을 들여다 봐도 연준이 그렇게 대규모 양적 완화를 단행할 필요는 없다”면서 “11월 3일은 미국 중간선거(2일)도 끝난 다음인 만큼 부담감도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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