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사내 하청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단결해 전국적 투쟁 전선을 만들 것입니다."(금속노조 관계자)
"그렇지 않아도 환율 등 대외 여건이 불안한데, 사내 하청 근로자 문제가 불거져 걱정입니다. 하청 근로자를 모두 정규직화할 경우 살아 남을 제조업체가 없을 겁니다."(모 철강회사 관계자)
재계와 노동계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에 이어 이번에는 사내 하청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놓고 정면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내 하청이란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 업체에서 파견 근무 형식으로 일하는 것을 말하는데, 노동계는 이들의 전면 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반면, 재계는 현실을 무시한 요구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상반기 타임오프 실시를 놓고 정부 및 재계와 각을 세웠던 노동계는 최근 사내 하청 업체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2일 제2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확정하면서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는 노동조합이 활성화되지 않은 대기업의 하청 업체를 적극 조직화하겠다는 뜻이다. 금속노조 일각에서는 사내 하청 문제를 올 하반기 최대 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해 투쟁을 독려하고 있다.
이 같은 노동계 움직임의 직접적 계기는 지난 7월에 있었던 대법원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H사 사내 하청 업체에서 일하다 2005년 2월 해고된 최 모씨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최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정규직과 섞여 일을 하며 원청 업체의 지시와 통제를 받은 것으로 판단, 파견 근로 2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원청 업체의 정규직원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 등 노동계에서는 대기업 사내 하청 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이들은 모두 원청업체의 정규직이 되어야 하며, 그 동안 정규직에 비해 덜 받은 임금도 돌려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25일"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며 속앓이는 물론 임금 차별까지 받아야 했던 사내 하청 문제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해결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국내 산업을 대표하는 대규모 제조업체가 대부분 사내 하청 비율이 높기 때문. 조선업계의 경우 원청 근로자보다 사내 하청 근로자가 더 많고, 화학업계도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내 하청 근로자를 정규직화할 경우 업체별로 최대 수 천억원에 달하는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재계는 근로자 파견 업종을 32개로 제한하고 기간을 2년으로 한정한 현행 파견근로자 관련법을 조속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다. 복지 국가의 상징인 독일도 2004년 종전에 2년이었던 파견 근로 기간을 폐지했으며, 일본도 2004년 파견 업종 제한을 대폭 풀었다는 것.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정규직의 노동 유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며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사내 하청 근로자를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는 현실을 무시한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내 하청 근로자 문제가 하반기 노사관계의 최대 이슈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자, 전문가들은 정규직이 기득권의 일부를 내놓고, 정치권이 현실에 맞게 법개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규모 충돌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유연화를 전제로 정치권이 이상(노동계의 주장)과 현실(재계의 요구)의 조화를 시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