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67ㆍ사진)씨의 장편소설 이 조성식 월간 신동아 기자의 저작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황씨가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은 불찰”이라며 조씨의 기사를 참고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황씨는 “사실을 인용하면서 인물에 따라 인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에 조명을 가해 소설적 윤색을 했던 것으로, 이것이 표절에 해당하는가는 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며 표절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동아는 이 달 발간된 11월호에서 의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에 서술된 조직폭력배 관련 내용의 일부가 조씨가 김태촌, 조양은, 조창조씨 등 폭력조직 인사들을 인터뷰해서 쓴 책 를 표절한 혐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중국에 머물며 작품 집필을 하고 있는 황씨는 25일자 경향신문에 공개한 해명서를 통해 “소설의 시대물은 대개 신문기사 등 사실 자료를 취합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가 지적된 4장 또한 (조 기자가 쓴) 신동아 2007년 6월호에 실린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 떠있는 각종 회상자료와 인터뷰 내용 등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반세기에 걸친 현대사의 방대한 자료를 다뤘기 때문에 소설 내용에 주를 달거나 전거를 일일이 밝힐 수 없었다”며 “인터넷상의 자료는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필요한 대목만 메모해 뒀다가 사용한 터라 일일이 출처를 확인하여 밝히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을 출간한 창비 출판사는 “법적 자문을 구한 결과 표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받았고 우리도 같은 입장”이라며 “작가와 상의를 거쳐 11월 중순쯤 재판을 발간할 때 참고자료 목록과 새로 쓴 작가의 말을 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은 지난 6월 출간 이후 줄곧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며 지금까지 18만여부가 판매됐다.
이에 대해 신동아 측은 “조 기자의 책은 신동아 2007년 6월호 기사뿐 아니라 2001년 김태촌 인터뷰, 2008년 조창조 인터뷰 등 기자의 여러 기사를 모으고 보완해 낸 책이며, 에는 황씨가 언급한 2007년 기사 외에 조씨가 기사와 책을 통해 밝힌 내용이 반영돼 있다”며 “그런데도 황씨가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인터넷 자료를 참조했다’고 해명하는 건 명쾌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을 호도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또 “황씨가 애초 소설 내용의 출처를 밝혔다면 공개적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겠지만, 국내 대표적 소설가인 황씨가 정도를 넘어 조 기자의 취재물에 의존한 것은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최근 소설 의 표절 논란에 이어 불거진 표절 논란을 두고 문단에서는 “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창작에 참고한 자료의 출처는 명확하게 밝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학평론가 조영일씨는 “일본의 경우 소설에 인용된 책, 자료, 음반의 출처를 꼼꼼하게 밝힌다”며 “예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는 안톤 체호프의 여행서 이 짧게 언급되는데, 한국어 번역판에는 없지만 일본어판에는 그 책이 누구의 번역본인가까지 명시해 놓았다”고 말했다.
조영일씨는 “한국 문단에는 작품의 참고자료를 밝힐 경우 작가의 취재 범위가 드러나고 문학의 독창성이나 신비로움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작가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사료들을 단순 나열한 역사소설 등 작가의 성실성을 의심케 하는 태작들이 양산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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