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안의 국회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여야는 지난 22일 전통시장 반경 500m 안에 SSM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하 유통법)을 우선 처리하고, 가맹점형 SSM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상생법)을 12월 9일까지 처리키로 합의했다. 그런데 통상교섭본부가 상생법 통과에 반대해 여야 간 합의가 지켜지기 어렵다는 이유로 민주당이 어제 유통법의 본회의 상정을 무산시켰다.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이 유통법을 먼저 처리해 중소상인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린 다음 정작 중요한 상생법은 무산시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듯하다. 사실 SSM 규제를 위해서는 유통법과 상생법이 모두 통과돼야 한다. 유통법은 전통시장 반경 500m 이내의 SSM 개점만 제한할 뿐, 그 외 지역의 가맹점형 SSM에 대해선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SSM 규제법안이 올해 4월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는데도 정부ㆍ여당이 통상 분쟁 가능성을 이유로 처리를 미뤄왔다는 점에서 야당의 의구심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법 통과 반대 발언이 여야 간 정치적 합의를 깨뜨릴 정도의 명분은 되지 않는다고 본다. 통상교섭본부는 정부 대표가 아니며 SSM법의 주무 부처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SSM 규제를 반대하는 EU측을 상대하는 이해관계자일 따름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한ㆍEU FTA 비준을 끝내야 하는 통상교섭본부 입장에서 섣불리 찬성 의견을 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유통법과 상생법을 동시 처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여야와 정부, EU등의 이해관계 조율이 쉽지 않아 유통법과 상생법을 분리 처리키로 합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유통법을 우선 처리한 뒤 여당의 약속 이행 여부를 지켜보는 게 옳다. 여당이 SSM 규제에 필수적인 상생법 처리를 무산시킨다면 '친서민' 구호의 진정성을 의심 받게 될 것이다. 국회가 SSM법 처리를 미루는 사이, 지금도 월 50여 개의 SSM 점포가 골목상권을 잠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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