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에서 북부연방이 남부연합을 누르고 승리한 요인의 하나는 야전 공병(工兵)의 우세였다고 한다. 양쪽의 엘리트 지휘관과 장교는 웨스트포인트 육사 출신이 주축이었고 공병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연방을 탈퇴한 남부연합 쪽을 택한 웨스트포인트 출신 가운데 특히 공병 장교 수가 북부연방군보다 훨씬 적었다. 북쪽은 공업이 발달한 반면, 남쪽은 농업지역이다. 이 때문에 북군은 전쟁 수행에 긴요한 도로 철도 교량 등 수송망 건설에서 크게 앞섰고, 전쟁 초기의 열세를 딛고 승리한 토대가 됐다.
■ 공병 자원이 뒤진 남군은 붙박이 요새(要塞) 건설에 주력했다. 이는 병력과 물자 보급에서 갈수록 더욱 불리해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남군은 뒤늦게 공병 장교를 집중 양성하고 보충해 전쟁 말기에는 오히려 북군을 앞섰으나 이미 기운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패전한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Robert E. Lee) 장군도 공병 장교였다. 이런 역사적 경험 등을 기초로 미 연방의회는 일찍이 육군예하 사령부인 공병단을 연방기구로 지정, 군 전투 지원 및 건설 임무는 물론이고 국가 기반시설 건설과 관리를 맡겼다.
■ 미 육군 공병단(US Army Corps of Engineers)의 임무는 국가 안보와 경제활성화 및 재난 관리 등에 긴요한 공공 엔지니어링 서비스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민간 분야는 내륙수로의 보(洑)와 댐 건설 및 관리, 하상 준설, 홍수 조절이 대표적이다. 해변 조성과 환경 규제, 생태 복원까지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 강 운하 호수 연안 등의 내륙수로 1만9,000km와 보 257곳, 항구 300 곳과 선착장 600 곳을 관리한다. 내륙 수운(水運)은 국내 물동량의 6분의 1, 한 해 20억 톤을 철도의 50% 트럭의 10% 비용으로 수송한다.
■ 공병단은 댐 700 곳과 수력 발전의 24%도 맡고 있다. 또 제방 2,000곳의 안전과 115개 도시의 물 공급을 책임 진다. 이와 함께 호수 강 해안의 위락단지 2,500곳을 운영하고 1,800 곳을 지자체 등에 빌려주고 있는 미국 최대 아웃도어 위락업체이다. 국내외에 군과 민간 전문인력 3만4,000명을 거느린 미 육군 공병단을 우리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준설에 육군 공병단 117명과 장비 72대를 지원한 것을 두고'위헌'이니 '군사독재시대 발상'이니 '노예 노동'이니 떠드는 것은 답답하고 딱한 노릇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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