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나라 친근해졌죠, 한국어 실력도 늘구요"
“동건, 쁘빅쁘랍(쓰면서 읽어).”
“지렁이(~) 표시를 어떻게 읽지.”
23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트윈타워 2층에 위치한 세이브더칠드런 안산지부 사무실. 이곳에는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하나 토요 베트남 학교’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베트남어 교사인 이수민(베트남 이름 윙티남풍ㆍ43)씨는 베트남어의 6성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목소리를 높였다.“야요 삭, 야오 횡, 야오 하익, 야오 냑….” 아이들도 앵무새처럼 선생님을 따라 했지만 선생님은 곧바로“다시”를 외쳤다. 아이들이 따라 하는 소리가 너무 작았고, 발음도 성에 차지 않았던 것. 이씨는“아이들에게 이렇게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베트남어를 알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 나라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어가 아닌 소통을 가르치다
이씨의 말처럼 하나 토요 베트남 학교의 지향점은 베트남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이들의 소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학교는 하나금융지주가 아동전문기관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Kids of Asia)’의 일환. 하나금융이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대상으로 이중 문화와 언어 교육, 정서 지원을 통해 한국 사회의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다. 2008년 10월부터 서울 창전동과 인천에서 시작됐으며, 올해 8월부터는 외국인 근로자 최대 밀집 지역인 안산시로 확대됐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하나 토요 베트남 학교에는 안산 시내 다문화가정 아이 2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수업은 오전 10시30분부터 12시까지 한국_베트남 문화 비교 학습 수업, 오후 1시부터 2시30분까지는 베트남어 수업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학교가 주목받는 것은 프로그램의 초점이 언어 교육보다는 베트남인 어머니와 한국인 자녀의 정서적 교감에 맞춰져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아오자이를 한복과 비교하면서 아이들이 어머니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아오자이에 대해 어머니와 얘기하면서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는 식이다.
곽지은(26ㆍ여) 세이브더칠드런 경기지부 다문화팀장은 “아이들은 자라면서 한국말이 서툰 베트남 어머니와의 대화를 꺼리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들이 어머니 나라에 하나씩 알아 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자랑했다. 실제 이날 수업을 받던 시현(8)양은 “엄마에게 베트남어로 인사를 하니까 날 안아 주며 너무 좋아했다”며 “나중에 엄마와 베트남 외가에 가서 쌀국수를 맘껏 먹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력 격차 줄이는 가교 역할도
하나 토요 베트남 학교의 또 다른 역할은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일반 아이들 간의 학력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저소득층이어서 교육 환경 자체가 일반 아이들에 비해 열악한 상황. 실제 정부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초중고 취학률은 83%에 불과하다. 한국 아이들의 평균 취학률이 95%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 게다가 어려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외국인 어머니 밑에서 큰 탓에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한국말을 잘 구사하지 못해 학력 격차는 더 커진다.
때문에 하나금융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한국어가 서투른 성장기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집중 교육해 정상적 학교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 특히 한국어 선생님을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1대 1로 연결시켜 매주 한 차례 이상 가정 방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일종의 한국어 집중 과외인 셈이다.
하나 토요 베트남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유미(7)양은 이 프로그램 덕분에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미는 베트남인 어머니가 아버지와 헤어지는 바람에 생활이 어려워져 베트남 외가에서 2년간 자란 뒤 돌아왔기 때문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한국 나이로 올해 8세인 유미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진학을 할 수 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 토요 베트남 학교에서 매주 집중 교육을 받고, 주중 한 차례씩 한국어 선생님의 방문 지도를 받으면서 한국어 실력이 몰라보게 늘었다. 유미는 “받아쓰기가 잘 안돼서 걱정이지만 내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갈 수 있어 너무 좋다”며 벌써부터 설레 했다.
곽 팀장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경우 저소득층인데다가 부모들의 이혼 등으로 가정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기업과 손을 잡고 지원을 확대해 이들이 적어도 고교 교육은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 다문화 가정 지원 앞장 하나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사회공헌 활동의 핵심 키워드는 '나눔' 문화, 푸름' 세 가지로 요약된다. 나눔은 소외 계층을 위한 봉사 활동을, 문화는 각종 문화 활동에 대한 지원을, 푸름은 다양한 환경보호 활동을 포함한다. 특히 하나금융의 사회공헌 활동은 소외 계층에 대한 단순한 퍼 주기를 떠나 사회 구조적 문제를 면밀히 검토, 특정 계층을 집중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하나금융의 사회공헌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바로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 중 상당수가 ▦외국인 어머니의 미숙한 한국어 구사 능력으로 인한 학습 부진과 언어 능력 부족 ▦부모 나라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정체성 혼란 ▦생김새 차이로 인한 또래 집단으로부터의 차별과 따돌림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금융은 이들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
특히 하나금융은 최근 흑진주 3남매에 대한 지원 약속을 통해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대표 기업으로 떠올랐다. 흑진주 3남매는 가나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2남 1녀의 아이들. 어머니가 뇌출혈로 사망하고, 아버지마저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오갈 데가 없어지자 하나금융의 계열사인 하나은행이 고교 졸업 시까지 생활비와 교육비 전액을 지원키로 했다. 1회성 단발성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돌봐 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면모를 보여 준 것이다.
다문화가정 지원 선도 기업답게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먼저 아동전문기관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하는'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이중 문화와 언어 교육을 시켜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고, 향후 한국을 대표하는 지역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2008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00여명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이와 함께 하나금융은 베트남어와 한국어로 병행 표기된 어린이 동화책 3종을 직접 출간하고, 베트남 다문화가정에 1만부를 전달해 평소 언어 문제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던 베트남 어머니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7월 하나금융 임ㆍ직원과 자원봉사자가 함께 한'하나되는 그린(Green) 축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축제는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과 공동으로 소외된 다문화가정과 외국인근로자를 돕기 위해 마련한 바자회로 수익금은 다문화가정 환경 개선 사업을 위한 지원금으로 쓰인다.
하나은행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다문화가정에 지원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하나금융이 소외 계층의 정보이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2005년부터 진행해 온'사랑의 PC 전달'프로그램을 지난해에는 다문화가정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밖에 국내 대표 금융 그룹답게 외국인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전자 금융 교육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이 주축이 된 이 사업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외국인들이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인터넷뱅킹 등 금융 관련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2020년에는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다문화가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에 대한 장기 지원책을 마련해 다문화가정도 한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을 줄 방침이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