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진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려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한국의 서민적 운치를 자아내는 풍경으로 우리에겐 이것이 돼지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그러나 돼지의 쓰임은 상상 이상으로 훨씬 광범위해 삼겹살까지 포함해 무려 185가지나 된다고 한다. 네덜란드 예술가 크리스티엔 메인데르츠마가 3년간 연구해 얻은 결론이다. 메인데르츠마는 네덜란드에 돼지 1,200만마리가 있는데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에 궁금증을 느껴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이름 없이 단지 ‘PIG 05049’라고 불리는 무게 104kg 돼지 한 마리의 전 생애를 3년 동안 추적했다.
추적 결과 돼지는 우선 비누, 샴푸, 화장품, 치약 등 일상에서 쓰이는 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됐다. 돼지털에서 추출한 단백질은 반죽 촉진제로 사용되며, 돼지 젤라틴은 치즈 케익이나 바닐라 푸딩 등의 음식재료로 쓰이고 있었다. 도자기, 페인트 붓, 사포 등에도 돼지가 원료를 제공했다. 이 외에도 돼지 콜라겐은 주름 개선에 좋고 돼지 심장판은 인간에게 이식될 수도 있다. 이처럼 방대한 쓰임새에 미 CNN은 24일 “돼지들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메인데르츠마는 CNN에 대부분 제품의 원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 제대로 된 소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재료가 무엇이고 누가 만드는지 명확히 밝힌 제품만을 구매하려 한다면 그것이 곧 표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인데르츠마의 작업은 돼지를 원료로 하는 모든 사업제품을 망라한 책 <돼지 05049> 로 출간됐으며, 지난 7월 예술가, 디자이너 등이 만든 비영리 기구 TED가 영국 옥스퍼드에서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공개됐다. 돼지>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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