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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57> 전통가족제도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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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57> 전통가족제도로 돌아가자

입력
2010.10.2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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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성장한 것은 미사일과 여권(女權)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럴 정도로 여권은 근년에 괄목할만한 발전을 했다. 여성은 오랜 동안 억압에서 풀려 마음껏 역량을 발휘해 남성을 제치고 가정이나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왜 여성이 이렇게 갑자기 부상하게 되었을까? 성리학적 가족제도의 남존여비 사상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성리학에서는 차별을 중시했기 때문에 남아선호사상, 남존여비사상이 팽배했다. 여성은 교육과 과거, 관직에서 배제되었고, 삼종지례(三從之禮ㆍ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복종하는 것), 칠거지악(七去之惡ㆍ여자가 시집에서 쫓겨나는 7 가지 죄)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서구에 남녀평등 사상이 들어와 여성도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관리가 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선거에서 여성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다투어 여성우대정책을 펼쳤다. 이 때문에 경제권과 자녀교육권이 완전히 여성에게 넘어갔고,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부권상실, 기러기 아빠가 사회문제로 된 것은 당연하다. 호적법도 바뀌어 자식은 부모 중 어느 쪽 성을 따라도 되게 되었다. 완전히 성리학적 가족제도와 정반대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균형 잡힌 가족제도를 회복할 것인가? 전통 가족제도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고려시대, 아니 1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성리학의 부계중심 가족제도가 정착되지 못했다. 혼인만 해도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살다가 오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 유행했고, 재산도 자녀균분상속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17세기 이후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여자가 남자 집으로 시집 오는 친영(親迎)으로 바꾸어 여성에게 각종 차별이 가해졌던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아버지가 날 낳으시고, 어머니가 날 기르시니”로 되어 있어 부계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가 함께 나를 낳은 것이지 아버지 혼자 낳은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에는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았다. 사위는 처갓집에서 함께 살고 재산도 동등하게 받았으며, 군역에도 함께 편제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에 입신양명하려면 친가뿐 아니라 외가, 처가의 지위가 높아야 했다. 혼인이 출세를 좌우하고,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었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개혁을 위해서는 과거의 이상적인 옛 제도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복고(復古)다. 그러나 복고라도 무작정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기 위해 내거는 슬로건이다. 실제로는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전제일 뿐이다. 가족제도에서도 고려시대 남녀평등의 가족제도로 돌아가되 가통 만은 그대로 남계에 맡기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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