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서로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를 접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결혼이민자 16만7,000명, 다문화가정 자녀 10만명 시대를 맞아 미래를 내다 본 '경북형 다문화 프로젝트'가 국내 다문화정책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급속도로 늘고 있는 다문화가정을 우리 사회의 이웃으로 끌어안고 주역으로 키워내기 위한 청사진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이다.
결혼이민자 8,906명이 7,697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경북은 일찌감치 '다문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읽었다. 2050년이면 다문화가족과 자녀들이 우리나라 인구의 21.3%, 즉 다섯 명 중 한 명이 될 것이라는 유엔미래보고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농어촌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은 달라진 세상과 생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결혼이민여성의 국내정착을 지원하는데 주력했던 경북도는 이제 다문화 자녀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우리말과 엄마나라 언어 등 2개 언어를 자연스레 익히는 이들 자녀들이 태생적으로 국제화 분야에서 앞서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한 몫 했다.
이에따라 경북도가 올해 다문화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편성한 예산은 8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보다 38%나 늘어난 수치다. 이에 힘입어 올해 새로 추진된 신규사업만 다문화가족 자녀교육지원과 인식개선사업 등 모두 13건이나 된다.
다문화가족 자녀에 대해서는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다문화가족에게 교육과 상담, 취업, 통역, 번역 등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도 3개소 더 확충해 16곳이 운영 중이다.
다문화 어린이집은 경북에서 태동했다. 2008년 국내 1호 다문화 어린이집으로 선정된 경북 예천의 성락어린이집에서는 베트남과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등 5개국 다문화가정 어린이가 외국 전통옷을 입고 다문화 패션쇼를 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부모와 교사가 외국의 동화책도 읽어주고 그 나라 전통 악기도 연주하며 엄마 나라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성락어린이집의 호응에 힘입어 지난해말 경북에는 안동의 아름어린이집과 의성의 춘산어린이집 등 4곳이 추가로 다문화 어린이집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20일 '2010 전국우수보육프로그램 공모전'에서 다문화를 주제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성락어린이집 김혜숙(42ㆍ여) 원장은 "현장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서로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를 접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엄마 나라 언어도 이제 다문화 자녀에게는 블루오션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경주에서 열린 '엄마나라 말 잔치'에는 20여 팀이 참가, 외국어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꼬마들은 베트남어와 중국어 등으로 동화구연과 동요를 불렀고, 초등학생 이상은 엄마 나라 말로 유창하게 외가를 소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에 힘입어 올해부터는 경북의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마다 '이중언어교실'을 개설, 다문화 어린이들의 잠재적인 외국어 능력개발에 나섰다. 또 결혼이민 부부를 대상으로 영어와 중국어, 베트남어 3개 국어로 된 '자녀교육용 가이드북' 3,000부를 배부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어 교육도 필수다. 방문교육지도사 332명이 다문화가정을 직접 방문, 우리말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구미 등 7개 다문화지원센터에서는 연령과 수준에 맞는 언어교육을 별도로 하고 있다.
온라인도 개방됐다. '결혼이민자 한국생활적응시스템'(www.aic.go.kr)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4개 언어로 피노키오 등 3D 입체 그림동화를 제공, 엄마와 아이가 자연스레 말을 배우고 있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9일 구미 동락공원에서는 '4회 다문화 음식 문화 축제'가 열려 참가자 1,000여 명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몽골 초이벙(고기만두)와 필리핀 미꼬(떡), 태국 룩진능(쇠고기 꼬치), 베트남의 월남쌈, 캄보디아 차크나이(닭볶음), 인도네시아 찹쌀주먹밥 등 음식의 향연이 펼쳐졌다.
다문화 자녀들이 커서 엄마 나라 대학을 쉽게 가는 길도 열렸다. 경북도는 다문화가족지원기금 조례를 제정, 올해 12억원 등 5년간 60억원의 기금 조성에 나섰다. 이 기금으로 유학비에 장학금도 지원하게 된다.
경북도 최관섭 보건복지여성국장은 "결혼이주여성이 우리 농촌경제의 돌파구를 열고 있는 가운데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며 "경북이 앞장서 다문화사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 다문화둥이 인재 육성위해 '다문화기금' 조성
경북 고령에 사는 필리핀 출신 로시타막사나이(34ㆍ여)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한국에 시집온 지 6년째인 그는 12월이면 처음으로 필리핀 친정 나들이를 가기 때문이다. 물론 경북도와 고령군이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다 다문화둥이인 두 자녀의 미래를 생각해도 흐뭇하기만 하다. 다문화둥이가 커서 엄마 나라에 대학을 다닐 경우 경북도가 유학비와 장학금 일체를 대준다는 것.
경북도가 급증하는 다문화가족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위해 전국 처음으로 60억원 규모의 다문화가족지원 기금 조성에 나섰다. 도와 시군이 공동으로 올해부터 매년 12억원을 조성, 60억원을 마련해 2015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한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우수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장학금과 유학자금으로 지원한다.
특히 '다문화둥이'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엄마나라 유학금으로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자녀들이 양질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중장기적 프로젝트를 마련, 다른 시도와 차별화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추진해 다문화가족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경북도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경북도 여성청소년가족과 김기창 가족복지담당은 "지금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이벤트성 관심이 아니라 자녀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다문화둥이들을 미래의 글로벌 인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홍국기자 hk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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