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세계 80여 개 나라의 해양생물학자 2,700여명이 2000년부터 꼬박 10년 동안 수행한 해양생물센서스(Census of Marine Life)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해양생물 다양성을 파악하기 위해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의 종류와, 어디에 얼마나 많은 생물이 살고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실시하는 인구센서스와 비슷하다. 단지 대상이 해양생물인 것이 다르다.
과학자들은 540차례에 걸쳐 세계의 바다는 물론 남극과 북극 바다와 심해까지 탐사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부터 길이 30m가 넘는 고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해양생물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20만 종이 넘는 해양생물이 확인되었으며, 그 가운데 5,300여 종은 여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생물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모르는 해양생물의 숫자가 훨씬 많다. 다만 수백만 종이 살고 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워낙 바다가 광대하다 보니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바닷물 1리터 속에 3만8,000종이나 되는 세균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산소가 없는 해저 퇴적물 속에 사는 동갑동물 종류와 5,000만 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새우 종류도 발견하였다. 이처럼 해양생물에 대한 신기한 사실들이 속속 밝혀졌다. 이번 해양생물센서스를 통해 새로이 밝혀진 신비로운 해양생물의 사진은 언론을 통해 가끔 보도됐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영화 가 개봉되어 해양생물 100여 종의 생생한 생활 모습을 보며 한여름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이 영화 역시 해양생물센서스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험난한 바다에서 해양생물 조사를 하는 이유는 많다. 인구센서스를 통해 인구 증가와 인구분포의 변화, 연령과 성별구조 변화 등 기초적인 인구통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 등을 위한 여러 국가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해양생물센서스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통해 해양생물지리정보시스템(OBIS)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었다. 해양생물 다양성을 파악하면 향후 환경 변화에 따라 해양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지구온난화 등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바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환경과 생태계도 점차 바뀌고 있다. 해양생물센서스 자료는 해양 환경을 관리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다.
인류는 해양생물 자원을 식량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해양생물에서 의약품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물질을 얻는다. 불치병이라고 생각하는 암이나 에이즈를 치료하기 위한 약품 개발이 해양생물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육상에서 얻은 약효가 있는 식물이나 동물을 재료로 한약을 달여 병을 치료해왔다. 그러나 해양생물 중에는 육상 동식물보다 큰 효과의 약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단지 바다에 살다 보니 재료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아 육상생물보다 덜 이용되었을 뿐이다.
최근에는 해양생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플라스틱이나 목재를 대체할 물질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미 해조류에서 얻은 연료로 자동차가 달린다. 이처럼 해양생물의 자원 가치는 엄청나다. 그만큼 해양생물센서스에서 얻은 결과는 값지다.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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