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끼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현실적 해법을 찾아낸 한국의 중재, 미국의 치밀한 사정정지 작업, 예상을 뛰어넘은 중국의 유연성...
파국으로 치닫던 환율 전쟁의 물꼬를 화해 쪽으로 틀 수 있었던 데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경주에서 최대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한ㆍ미ㆍ중 3국은 한 달 넘게 물밑에서 극비 조율 작업을 벌였다.
2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이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아이디어를 미국과 중국 측에 처음 제안한 것은 지난달 초. 이 관계자는 “갑자기 9월 들어 환율 문제가 불거지고 이 문제가 각국 국내 정치 상황(미국 중간선거 등)과 맞물리면서 G20 회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지 시작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G20 회의 실패를 우려한 이명박 대통령이 대안 마련을 지시했고, 경상수지를 조정해 세계경제 불군형을 해소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당시만해도 경상수지 문제는 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상황이 급물살을 타게 된 건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한국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국내총생산(GDP) 대비 4%’라는 구체적 수치를 들고 나오면서부터. 가이트너 장관이 중국, 유럽 등과 사전 조율을 거쳐 각국의 수용할 만한 제안을 공론화한 것이다. 중국 이강(易綱) 인민은행 부총재가 이달 초 “향후 3~5년 내 경상수지 흑자를 GDP의 4% 이내로 축소할 계획”이라고 언급한 것도 미국과의 교감이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종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경주 회의장에서도 미ㆍ중간 양자 회담이 수 차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에 직접 참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부적인 사안에서 합의를 이루기 어려워 상당수 참석자들이 밤샘 협상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가이트너 장관은 “중국이 건설적이고 실용적 역할을 했고 다자주의 협력에 적극적 태도를 보여 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IMF 개혁 분야에서는 쿼터(지분) 비율 하락을 감수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양보가 결정적이었다. 서방 선진 7개국(G7) 장관들이 두 차례나 별도 회동을 하며 이견을 조율한 것도 사상 최대의 쿼터 조정을 성사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경주=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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