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각 분야에서 약진하면서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말은 하나의 클리셰(진부한 문구)가 됐다. 하지만 남녀 차별의 벽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세계 양성평등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34국 중 104위에 머물렀다. 선진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회계감사원(GAO)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여성들이 고용과 임금 등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유리 천장'(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보이지않는 장애물)을 깨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이미 많은 여성들이 이미 유리 천장을 넘어섰다. 우리는 서울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 제니 쉬플리 전 뉴질랜드 총리, 로라 타이슨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 등 각 분야에서 우뚝 선 여성들이 한국일보의'세계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여해 기조연설을 하고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컨퍼런스는 그들의 도전기와 성공담, 그리고 21세기를 진짜 여성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에 대한 발전적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콘돌리자 라이스 : 性·인종 이중장벽 넘어 美외교수장 역임
백인 남성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중 장벽을 깨뜨리고 미국의 외교수장에 올라 '강한 미국'을 이끈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
라이스가 1954년 미 남부의 앨러바마주에서 태어났을 때는 흑인에 대한 멸시와 천대가 극에 달했다. 8살 때는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의 테러로 친구가 사망하는 충격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강했다. 인종차별에 굴복하지 않고 "백인보다 두 배 더 노력하자"고 수없이 다짐했다. 목사인 아버지와 음악교사인 어머니의 믿음, 교육열도 큰 힘이 됐다. 그의 부모는 "지금 네가 햄버거를 사먹을 수 없지만 언젠가 미국의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라이스가 편견과 인종차별을 넘어서는 사다리로 선택한 것은 학업이었다. 그는 15세 때 덴버대에 입학, 19세에 정치학과를 우등 졸업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가 목표였던 그가 국제관계에 눈을 뜨게 된 것도 덴버대 시절이었다. 미국의 첫 여성 국무장관 메들린 올브라이트의 아버지인 체코 외교관 출신 망명자 요세프 코벨 교수의 가르침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에 석사, 26세인 1981년 박사학위를 딴 라이스는 스탠퍼드대 조교수로 학자의 길을 걸었다.
소련 전문가로서 명성을 얻은 라이스는 도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부 자문역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후 1989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소련ㆍ동유럽 담당 책임자가 되면서 반경을 넓혔다. 그는 이 때 소련이 독일 통일을 인정하도록 막후역할을 해냈다. 1991년 스탠퍼드대로 돌아온 그는 1994년 '최연소, 첫 여성, 첫 흑인'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부총장에 취임했다.
이후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흑인 여성 최초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됐으며 2005년 국무장관이 됐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콘디(라이스의 애칭)와 힐러리 클린턴 중 한 명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그는 퇴임 후 대외행사로는 처음 세계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한다.
이대혁 기자
● 제니 쉬플리 : 뉴질랜드 첫 여성총리로 소신과 뚝심 정평
"명예로운 퇴진과 치욕적인 추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
1997년 11월 초 제니 쉬플리 당시 뉴질랜드 운송장관이 집권당인 국민당 당수이자 총리인 짐 볼저에게 던진 최후통첩이다. 국민지지를 잃은 볼저 총리가 자리에 연연할수록 당과 내각이 더욱 어려움에 처한다는 판단에 따른 도전이었다. 결국 볼저 총리는 다음날 "쉬플리에게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62세의 남성 총리가 45세의 여성 장관에게 백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이전에도 강골의 행보를 보였다. 93년 복지장관 시절 그의 초상이 거리에서 화형식을 당하는 수모까지 감수하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하는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한 바 있다.
세계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의 개막 기조연설을 맡은 쉬플리 전 뉴질랜드 총리는 이처럼 뚝심있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강한 것은 아니었다. 말보로여대를 나와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75년 국민당에 입당하면서 그의 특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87년 최연소(35세)로 의회에 입성했고, 이후 다섯 차례나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2년 선거에서 지자 미련없이 정계를 떠난 쉬플리는 제네시스 에너지, 메인질컨스트럭션 등의 회장, 전직 국가지도자들 모임인 마드리드클럽의 부회장 등을 맡아 또 다른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박민식 기자
● 로라 타이슨 : 美 증시 쥐락펴락한 경제계 거물
로라 타이슨 미국 UC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국 경제계의 거물이다. 현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경제회복자문위(PERAB) 위원이고, 얼마 전엔 PERAB 의장 하마평에 올랐었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미 PERAB 의장을 역임했고, 대통령 국가경제보좌관도 지냈다. 1998년부터 8년간 <비즈니스 위크> 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비즈니스>
지난해 7월 그가 "2차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한 마디 하자 경기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확산돼 미 증시가 순식간에 2% 폭락한 것은 그의 파워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그는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최초의 여성 학장(2002년~2006년)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최문선 기자
● 시고니 위버 : 스크린 넘어 환경문제 앞장선 여전사
시고니 위버는 할리우드 원조 여전사다. 영화 '에일리언'시리즈에서 외계 괴생물체에 맞선 리플리 역을 맡아 보호받는 대상으로 그려지던 스크린 속 여성상을 뒤집었다. 주로 공상과학 영화에 출연하며 명성을 다진 그의 별명은 'SF의 여왕'(The Sci-Fi Queen).
단순히 강한 면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강인하면서도 감성적인 연기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버는 '정글 속의 고릴라'와 '워킹 걸'로 1989년 골든글로브 최우수여자주연상과 최우수여자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진기록도 갖고 있다.
그의 힘은 스크린 밖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환경주의자인 위버는 2006년 10월 유엔총회 개막을 앞두고 저인망어업에 따른 바다 생태계 문제 등을 지적해 국제적 관심을 끌어 모았다. 지난 4월엔 지구의 날 40주년을 맞아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에 출연하면서 지구가 악몽 같은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생각했으나 실제 환경을 그렇지 않다"고 경고했다.
라제기 기자
● 케이트 스위트만 : 개도국 젊은 기업가 키우는 경영컨설턴트
"리더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를 실천하는 것이다."
20년 넘게 경영 컨설턴트이자 교육자, 작가, 편집자, 연설가로 활동해온 케이트 스위트먼은 공동 집필한 저서 <리더십의 5가지 규칙> 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리더십의>
스위트만은 미국은 물론 유럽, 중동, 아시아를 무대로 골드만 삭스, 노바티스, 노키아, DHL 등 세계적인 기업과 싱가포르 인적자원부 등 정부를 대상으로 조직구성과 운영,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인도, 르완다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젊은 기업가 육성을 돕고 있다. 예일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했으며, 미 경영전문잡지 패스트컴퍼니에서도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이대혁 기자
● 이자벨 아길레라 : 스페인서 가장 성공한 신화적 CEO
스페인 기업 인드라 시스테마스의 이자벨 아길레라 이사는 '세계 50대 영향력 있는 기업인'(포춘), '유럽의 25대 경영인'(파이낸셜 타임즈), '세계 30대 경제인'(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스페인에서는 남녀 불문하고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힌다.
그는 1997년 델컴퓨터의 스페인ㆍ이탈리아ㆍ포르투갈 지사 최고경영자를 맡아 델컴퓨터의 지역점유율을 9위에서 1위로 끌어 올렸다. 또 그가 NH호텔 CEO를 맡았을 때 전세계 체인호텔 240곳의 운영과 재무성과를 매일 직접 챙겨 경영을 혁신한 일은 업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GE 스페인 CEO, 구글의 스페인ㆍ포르투갈 최고경영자도 지냈다.
최문선 기자
● 나질라 알 아와디 : UAE 최연소 의원…아랍 여성들의 롤 모델
"나는 항상 도전해왔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질라 알 아와디의 도전은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해도 화려하다. 아랍에미리트(UAE) 최연소 연방 의원, 관영 두바이미디어그룹(DMI) 최초 여성 부회장, 두바이 원TV 총책임자, 영문잡지 걸프 뉴스 칼럼니스트 등이 현재 그의 위치다. 미국 뉴햄프셔대에서 역사와 법을 공부한 그는 UAE로 돌아가 기자로 근무하면서 여성인권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알 아와디는 줄곧 "여성도 기회만 주어지면 남성만큼 잘 할 수 있다"면서도 "여성 역시 일에 맞는 능력과 자질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알 아와디는 보수적인 아랍국가에서 신세대 여성들의 롤 모델이며, 떠오르는 여성 지도자로 꼽힌다.
이대혁 기자
● 루시 P 마커스 :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차세대 리더' 꼽혀
마커스 벤쳐 컨설팅 창립자인 루시 P 마커스는 2002년 다보스포럼에서 차세대 리더로 선정될 정도로 자타 공인하는 글로벌 경제전문가다. 마커스 벤쳐 컨설팅과 하이테크 위민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그는 기업들에게 "지금 어떤 시장환경에 처해있는지, 또 어떻게 시장에서 승리할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미국 재무부의 경제정책국에도 몸 담았으며 회계컨설팅업체 '빅4'로 불리며 세계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의 동유럽 부문, 인피티니 파이낸셜 테크놀로지의 유럽ㆍ중동ㆍ아프리카 지역 마케팅을 총괄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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