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학생이지만, 내일은 은퇴자다. 우리의 60세 은퇴권리를 수호하자!” “기성세대가 2년 더 일하면, 우리 세대 실업자신세 2년 더 길어진다!” 요즘 프랑스 전국 대학ㆍ중등학교 교정에서 나부끼는 격문들이다.
아직 연금에 가입도 하지 않은 학생들이 40년 뒤에나 자신에게 적용될 은퇴연령 연장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법 반대의 선봉에 서는 것을 놓고 프랑스가 논쟁에 휩싸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말썽쟁이들’이라며 엄벌을 위협했지만, 반대편에서는 샤를르 드골 전 대통령을 하야시켰던 ‘68세대의 재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968년 낭테르대학 학생운동 지도자였던 다니엘 콩방디 유럽의회 의원은 “17~20세 젊은이들이 연금개혁을 자신의 문제로 여긴다는 건 초현실적이지만, 그들이 직면한 좌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초현실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21일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최근 20여년 간 잠잠했지만 사실 프랑스에서 젊은 세대들이 거리 시위를 통해 자신들 고유의 정치의식을 창출하고 공유하는 것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이어져 온 전통이다. 소르본느대학교 수학과 파스칼 볼디니 교수는 “15세 때인 1971년에 참가했던 첫 시위를 잊을 수 없다”며 “이런 저항 전통은 프랑스에서는 아주 훌륭한 정치 교육의 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상주의에 불타던 ‘68세대’의 재림에 견주기에는 현재 프랑스 젊은이들의 처지는 너무 열악하다. 프랑스 청년 실업률은 20%를 상회해 유럽 최악이다. 프랑스 젊은이가 첫 직장을 구하는 평균연령은 27세로 그전까지는 저임 비정규직에 시달려야 한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 세실 하인츠만(16)은 NYT에 “우리의 미래는 실업자”라며 “정부는 정년을 연장할 것이 아니라 젊은층에게 일자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프랑스 젊은이들은 현재의 불만과 미래의 불안을 함께 표출하고 있음을 뜻한다.
전세계적 금융위기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불신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보다는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보이는 손’을 선호하는 프랑스 고유 정치풍토가 합쳐져 프랑스 젊은 세대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학자 올리비에 갈랑드는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에 “중산층 학생들의 시위가 다인종 빈곤층 학생들의 폭동과 결합하면서 점점 더 폭발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세대 사회운동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 국민의 59%가 연금개혁법 반대시위 계속에 찬성하고 있는데 18~25세에서는 찬성률이 80%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노조는 22일 전국시위에 이어 오는 28일과 다음달 6일 두 차례 더 전국적 파업시위를 결정하는 등 투쟁목표를 사르코지 정권 퇴진으로 확대하는 모습이다.
이에 맞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유시설 봉쇄 강제해산과 일과표결 명령을 발동해 상원표결을 서두르는 등 양측 대결은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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