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대통령 장관 등이 대피해 전시 지휘부로 사용할 지하방호시설이 북한이 개발 중인 전자기파(EMP)탄 공격에 무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위사업청이 21일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군이 확보한 지하방호시설은 EMP탄이 아닌 핵무기 공격에만 대처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은 올해부터 2014년까지 1,314억원을 들여 서울 2곳, 경기 1곳, 대전 2곳에 지하방호시설을 새로 만들거나 보수할 계획이다.
EMP탄은 상공에서 폭발하면서 EMP를 발산해 지상의 각종 무기와 장비를 무력화시킨다. 본래 의도는 아니지만 핵무기도 폭발 시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EMP탄은 폭발 후 EMP가 파장의 최고점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핵무기에 비해 짧아 밖으로 훨씬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고, 핵무기와 달리 EMP의 주파수 분석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한 정부연구기관의 EMP 전문가는 "EMP탄에 대비하려면 핵무기 대응 시보다 지하방호시설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미국 하원은 북한이 EMP탄으로 미 본토를 위협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군 당국은 8월 서해안 일대의 위성추적장치(GPS) 수신 장애를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북한이 EMP탄 제조용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것이란 얘기가 있다.
이에 대해 군은 핵무기용으로 확보한 지하방호시설이 지하 암반 아래 깊은 곳에 있어 EMP탄의 전자기파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자연 암반이 EMP탄의 EMP를 얼마나 차단하는지 사전 검증은 없었고, 내년 4월에야 연구용역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지하방호시설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현재대로라면 EMP탄 공격을 막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예산 확보는 더 큰 문제다. 지하방호시설은 400여개의 방으로 구성되는데 EMP탄에 완벽하게 대비하려면 방의 겉면을 전파차단용 자재로 감싸고 지상으로 연결되는 환기구와 각 방에 연결된 전선의 틈새에 필터를 설치해야 한다. 이 경우 비용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국방부를 제외한 다른 부처는 뒷짐만 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추가 예산에 소극적이고, 전시 지휘부를 운영할 청와대 등 관련 기관은 국방부와 비용을 절반씩 나누는 매칭사업에 부정적이다.
정 의원은 "막대한 돈을 들여 지하방호시설을 갖춰도 정작 EMP탄에 소용없다면 반쪽 짜리 대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전 검토부터 면밀하게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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