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경기 용인시 현대모비스 마북연구소에 삼성LED의 박무윤 수석연구원 등 연구진이 찾아 왔다. 서류 가방에는 각종 실험 데이터가 가득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에 발광다이오드(LED) 전문회사 연구원이 왜 찾아 왔을까. 자동차 LED 헤드램프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것. 이날 양 회사 연구진이 모인 것은 연구 개발의 마지막 단계를 앞둔 때였다. 연구 성과물을 살펴 본 두 회사 연구진들은 곧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개발을 마무리할 수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인흠 현대모비스 수석연구원은 “1년 동안 수십 차례 모여서 서로에게 자동차 램프와 LED를 결합할 수 있는 기술적 특성을 설명하고 각각의 실험 결과를 보충해 온 결과다”며 “곧 국내 완성차는 물론 해외 고가차에도 두 회사가 만든 LED 헤드램프가 사용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대기업간의 상생도 활발해질 움직임이다. 치열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자동차, 전자, 화학(전기차 배터리) 등 뿐 아니라 앞으로는 첨단 소재 분야로 영역이 넓어질 전망이다.
21일 현대모비스는 삼성LED와 손잡고 세계 수준의 고광량 LED 헤드램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양사가 개발한 LED 헤드램프는 빛을 내는 양이 탁월하다. 필립스와 오스람 등 기존 타사의 제품보다 15%에서 최고 40%까지 빛을 더 낼 수 있다. 또 온도에 민감한 LED의 특성을 고려해 열저항을 1와트당 2도 정도로 낮췄다. 열저항에 따른 온도 변화를 최소화할 경우 LED의 수명이 길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기존 해외 업체의 제품보다 여러 방향으로 보내는 빛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특성을 지녔다.
두 회사가 손을 잡은 것은 지난해 4월. 현대모비스는 아우디 A8, 렉서스 600h 등 고급차에 LED 헤드램프 등이 장착되자 LED 등에 대한 미래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LED 제조 기술을 갖춘 협력업체를 확보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마침 삼성 LED도 새 수요 창출에 목말라하던 상태. TV에 편중된 수요를 다양화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글로벌 업계의 유행과 수요 창출이라는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두 회사는 의기투합, 지난해 4월 30일 협약식을 맺고 개발에 착수했다.
세계1위의 자동차 모듈(부품 덩어리) 업체와 세계 4위 수준의 LED제조사가 만났지만 성과를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자동차 헤드램프에 대해서는 각 정부가 빛의 밝기, 각도 등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 또 후발 주자인 만큼 도로상태, 기후 등 상황변화에 따라 램프가 움직이는 인공지능형 기능(AFLS)을 적용하려다 보니 성과물을 내놓기 쉽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도 난관이 많았다. 가로와 세로가 1㎜에 불과한 LED 칩을 동전만한 모듈로 만들고, LED 빛의 특성에 맞는 반사면을 설계하기가 녹록치 않았던 것. 두 회사는 수십 차례의 시행 착오를 거듭, 지난달에야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연구를 주도했던 박인흠 현대모비스 수석연구원은 “서로의 약점을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을 마친 두 회사는 2012년께 세계 시장을 무대로 본격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처럼 치열한 국제 경쟁을 위해 대기업간에 손을 잡는 사례는 앞으로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미래 핵심소재 분야에서는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LG화학, 현대모비스는 최근 다기능성 나노 소재의 공동 개발에 나서기로 했고 포스코와 현대차는 초경량 마그네슘 소재를 함께 개발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초기 개발 단계인 초고순도 실리콘 카본 개발에는 LG이노텍과 쌍용머티리얼, SK솔믹스, 포스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공동 연구를 추진 중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은 기존 제품에 대한 경쟁력 강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대기업간 상생은 신제품 개발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특히 대기업간 상생으로 에너지 절감 분야의 소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경우, 경제적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