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고 지훈은 노래했습니다. 저에게 꽃이 피는 것은 만남이고 꽃이 지는 것은 작별이라, 지는 꽃 앞에서 괜히 쓸쓸해집니다. 봄과 여름의 화려한 꽃과는 달리 서늘한 가을꽃이 질 때는 마음 더욱 스산해집니다.
꽃은 해를 따라 피기도 하고 해를 따라 돌기도 하는데 추분 지나고 나서 날이 갈수록 해의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뭉텅 짧아지고 햇살의 두께 또한 얇아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무심히 꽃이 진다고 말하지만 꽃이 져야 씨앗이 맺히는 법입니다. 씨앗은 생명이며 다음 해를 기약하는 약속이니, 사실 지는 꽃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꽃은 지면서 무거운 씨앗은 제 발밑에 거두고 가벼운 씨앗은 바람에 날려 보냅니다. 사람들은 꽃을 두고 피는 자리가 있어 지는 자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꽃에게 지는 자리가 있어야 피는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꽃이 진 자리 내년이면 또 다시 약속처럼 꽃이 찾아와 필 것입니다.
가을꽃이 지는 일, 사람의 삶에서는 또 한 해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하지만 글쎄요, 꽃은 새로 피기 위해 지고 사람은 시나브로 늙어가는 꽃일 뿐입니다. 꽃이 필 때도 눈으로 보고 꽃이 질 때는 마음으로 봅니다. 허나 지는 꽃도 꽃이니 아름답습니다. 지는 꽃의 시간도 참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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