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태광그룹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과거 태광그룹 관련 사안들에 대한 당국의 처리 과정이 잇따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관련 기관들은 "절차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는 타당한 사건 처리"라는 입장이지만, 석연찮은 정황과 태광 측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맞물려 의문이 가시기는커녕 커지고 있다.
2008년 초 국세청이 태광그룹의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적발, 상속세 790여억원을 추징하면서도 검찰에 통보하진 않았던 게 대표적이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2007년 태광산업 등 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서 고 이임용 창업주가 남긴 재산 가운데 태광산업 차명주식 32%가 공식 상속재산 목록에서 누락됐고, 일부는 현금화된 사실을 파악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상속세를 포탈한 정황이 포착된 셈이지만, 국세청은 검찰 고발 없이 탈루된 세금을 추징하는 데 그쳤다. '국세청의 중수부'라 일컬어지는 서울청 조사4국이 나선 사건이 이렇게 미온적인 조치로 끝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당시 국세청에 대한 태광그룹의 로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상속세의 단순 누락일 뿐, 고의적인 재산 빼돌리기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이 되는 경우는 사기 등 부정한 방법이 동원됐을 때이며, 추징금의 규모는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 누락'과 '고의 누락'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재벌그룹이 흔히 사용하는 차명계좌를 통한 상속 재산 빼돌리기의 수법이 그대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사건 때 대검 중수부는 김씨가 기업인들에게 받아 차명계좌로 관리해온 비자금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국세청 논리대로라면 상속세를 정직하게 신고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전혀 없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일단은 감추고 보자는 납세 풍토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광그룹은 검찰의 수사망도 번번이 피해갔다. 2003년 흥국생명 파업 당시 해직자 노조는 "이 회장 일가가 보험설계사 이름을 도용해 개설한 계좌로 313억원을 운영한 흔적이 있다"며 고발했지만, 검찰은 보험유치자의 이름을 바꾼 행위의 과실만 인정해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2006년 태광산업의 쌍용화재 인수과정에서 불거진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과 관련해서도 "당시 사용된 차명계좌는 모친인 이선애씨의 개인계좌로 보인다"는 판단과 함께 이씨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되는 데 그쳤다. 지난해 3월 태광그룹의 케이블방송 사업확대를 위한 '성접대 로비' 의혹 때도 서울서부지검은 청와대 행정관 2명을 성매매 혐의로, 방통위 직원은 단순 뇌물수수 혐의로만 기소했고,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내사했던 큐릭스홀딩스 편법 인수 의혹 역시 무혐의로 종결됐다. 그룹 차원으로까지 불똥이 튀어 치명타를 입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말이다.
금융당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6년 태광산업의 쌍용화재 인수와 관련해 당시 인수실무를 맡았던 흥국생명은 2004년 기관경고를 받은 적이 있어 3년간 보험업 허가를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금융감독위원회(현재는 금융감독원으로 분리)는 "인수주체는 지배주주가 다른 계열사인 태광산업"이라며 인수를 승인해 줬다. 특히 인수 경쟁사들에 대해선 불허했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태광 측에는 허용해 줬고, 통상 한달 이상 소요되는 지분취득 심사를 열흘 만에 '초고속'으로 처리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흥국생명의 자금이 태광산업의 쌍용화재 인수에 쓰인 것은 아니어서 대주주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제재할 순 없었다"며 "승인을 빨리 해 준 것은 당시 쌍용화재 대주주 간 다툼 등 회사 내부 사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STX의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한 쌍용화재 인수를 막았다는 의혹이 있지만, 이는 사실무근으로 인수 문의 자체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김정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