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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모든 울타리가 길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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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모든 울타리가 길이 될 수 있다면

입력
2010.10.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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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확정방으로 옮겨 처음 구치소에 온 것처럼 설거지부터 하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길 위의 이야기'로 인연이 된 그로부터 형을 확정받았다는 편지를 받았다. 수용자에서 수형자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힘든 감옥살이를 끝내고 혼자 고생하고 있다는 아내 곁으로 돌아가길 바랐는데 2년6월의 징역살이가 시작되었다. 가슴이 답답해져왔는데 편지 속의 그는 씩씩하다. "하루하루 날이 지나갈수록 나갈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한다고 썼다. 그는 내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길면 한 달 반가량 한국일보를 구독하지 못하니 내 연재를 보내주었으면 고맙겠다는 것과, 아내에게 출소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약속했으니 편지로나마 지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흔하디흔한 시인이 뭐라고. 하지만 징역살이가 힘들어도 그런 꿈이 있다면 시가 친구가 될 것 같아 그의 '독선생'이 되기로 했다.

얼굴도 모르는 제자지만 그에게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 그도 좋은 제자가 될 것이다. 편지 끝에 그가 덧붙인 여러 편의 시 구절 중에 '모든 울타리가 길이 될 수 있다면'에 오래 눈이 머문다. 편지를 다 읽고서야 편지봉투의 뒷면을 보았는데, 그곳에 깨알 같은 글씨로 반야심경 전문을 적어 놓았다. 그도 힘들 것이다. 그를 위해 반야심경을 읽어 본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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