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족은 공고하기로 유명하다. 그러기에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는 한국에서 가져갈 것이 있다면 가족제도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한국의 가족제도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서구 민주주의와 평등사상이 들어와 한국의 가족제도를 권위주의적이라고 매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부자의 종적인 상하관계보다는 부부의 횡적인 평등관계가 더 중시되고 있다. 부자의 종적인 관계는 권위주의적이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잔재이니 배격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호적법도 개정되어 호적은 가족관계부로 바뀌고, 족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가족의 축이 종적인 부자관계에서 횡적인 부부관계로 바뀌다 보니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가족의 정체성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그러니 이에 대한 처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가족은 생산, 양육, 양로, 애정, 교육, 오락, 종교, 정서안정 등 국가나 사회가 할 수 없는 많은 선기능(善技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중심축은 부자의 상하관계였다. 조선사회는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상하관계를 강조한 3강(三綱)이 평등관계를 강조한 5륜(五倫)보다 중시되었다. 조선시대에 (三綱行實錄)을 여러 번 개정해서 출간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평등관계인 오륜의 윤리로 서서히 바꾸어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이 인구의 절반인 여성표를 의식해 급격하게 여성이 바라는 대로 가족제도를 바꾸려 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니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게 사회의식이 바뀌어 가는데 따라 서서히 바꾸어 가면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가족은 속절없이 해체되고 있다. 가족해체는 사회해체를 촉진한다. 효(孝)는 이러한 가족해체를 저지하고 건전한 가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핵가족화, 독신가구 증가, 이혼율 급증, 출산율 저하, 근로여성 급증, 노인권위 상실 등 가족해체를 촉진하는 요인들이 늘어만 간다. 국가에서 복지정책을 쓴다지만 가족이 하는 것처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나?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족의 자조적(自助的) 기능을 제고해야 한다.
전통과 현대, 그 어느 사회든 효가 아니면 ‘가족가치’를 재생산할 수 없다. 효가 사회통합의 지름길이요, 사회발전의 첩경이다. 한국사회는 다른 사회와 다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관심과 희생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한국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거의 일방적인 애정을 쏟는다. 이는 태생적인 것이다. 따라서 자식들도 효의식은 누구에게나 강하게 잠재되어 있다. 이것은 서구사회와 극명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한국 특유의 ‘가족가치’가 유지되는 한 21세기 고도산업사회에서도 사회해체의 병리를 완화시키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국가에서도 이러한 한국의 ‘가족가치’를 부양하는 정책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서구의 물신주의로 상실한 인간성의 회복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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