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건물 경비원 김정국(가명)씨는 지난해 근무 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전치 5주의 상처를 입었다. 도둑맞은 현금도 문제였지만 200만원이나 되는 병원비도 부담이었다. 병원신세를 지면 당장 생계도 막막했다. 괴한에 당했다는 소문에 경비 자리도 위태로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김씨는 경찰의 피해자심리전문요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병원비 지원, 피해자와 가족의 심리상담, 새 직업소개까지 모든 과정을 안내 받았다.
#귀가 중이던 대학생 정은영(20ㆍ가명)씨는 묻지마 칼부림을 당했다. 생면부지 정씨의 얼굴과 다리를 칼로 무자비하게 베고 달아난 살인미수범은 붙잡혔지만 정씨의 얼굴 등엔 깊은 상처가 남았다. 한창 꾸밀 나이, 가슴 속 생채기는 더했다. 학교를 휴학했고 대인기피증이 왔다. 하지만 피해자심리전문요원의 따뜻한 상담은 정씨의 마음을 보듬었다. 정씨는 지원금을 보태줄 단체도 소개받아 두 번의 성형수술 비용도 해결했다.
범죄의 표적이 된 피해자와 가족은 모두 크고 작은 고통에 신음한다. 병원비 부담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직장을 잃거나 심리적 후유증을 앓는 등 2차 피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주 관심이 가해자 '처벌'에 맞춰진 탓에 피해자가 쉽게 도움을 청할 곳은 없었다. 경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 피해자심리전문요원 11명(1기)을 선발해 이듬해 각 지방경찰청에 배치했다.
그 중 인천경찰청은 발군이다. 전문요원 한둘이 강력팀에 소속된 다른 지방경찰청과 달리 올 3월 아예 '범죄피해자지원상담팀'이란 팀을 따로 꾸려 피해자보호를 전담하기 때문이다. 수사전문가 4명은 수사진행상황과 의문점을 풀어주고, 전문요원 2명은 피해자와 가족의 심리상담을 담당하는 구조로 경찰에선 첫 시도다.
이들의 일과는 살인 강도 상해 방화 성폭력 등 강력사건을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건들을 꼼꼼히 훑어보며 전문요원이 직접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권유하고 의문점이 있으면 편히 물을 수 있도록 관계를 형성한다.
김지나 경장은 "피해자 대부분은 공포에 떨며, 누구에게도 노출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데 마음의 상처가 곪지 않도록 따뜻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노력한다"고 했다. 박민정 경장도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을 때 피해자들은 경황이 없고 불안해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수사팀과 함께 나가 피해자와 가족을 돌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초기 상담이 끝나면 이들은 예산이 확보된 복지단체,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긴급 생활비용과 의료비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범죄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면 기초수급자로 선정되도록 돕는다.
전문요원들은 아동학 상담심리학 등을 전공한 학사, 석사들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뒤 전문교육을 받았다. 전국 11명의 요원은 3년간 3,000여건을 상담했고, 500여 군데 현장에 출동했다. 유괴사건 발생 시에는 현장에 출동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족의 심리치료도 한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범죄피해자 생활지원금 등은 사건 발생 두 달 뒤에나 나오는 게 보통인데, 정작 피해자구조를 위해 경찰에 배정된 예산은 없다. 당장 빈곤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눈앞에 있어도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없어 전문요원들이 주머니를 털어 피해자에게 쌀값 등을 쥐어주는 일도 잦다. 게다가 전국의 범죄피해자 보호를 11명이 나눠 맡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눈코 뜰새 없이 바빠 식사를 거르는 게 예사다.
김지나 경장은 "한 우즈베키스탄 노동자가 한국인으로부터 맞고 넘어져 뇌수술까지 받은 일이 있었는데, 범죄피해자 보호대상에 외국인은 포함되지 않아 결국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일이 아직도 마음 아프다"며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위한 폭넓은 지원과 국가적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전문요원 2기 요원 선발이 진행 중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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