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대한석탄공사 조관일 사장은 '막장은 희망입니다'라는 호소문을 내놨다. 사전적 의미로 '광산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의 끝부분, 또는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할 뿐인 '막장'이 부정적인 사회현상이나 혹은 갈 데까지 간 패륜적 행태를 비판하는 대명사로 사용되는 것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막장은 폭력이 난무하거나 불륜이 일상화된 곳이 아니라 30도 안팎의 고온을 잊은 채 땀 흘려 일하는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인데도 언론과 여론이 부주의하게 '막장국회'니 '막장드라마'니 하는 유행어를 남발한다는 것이다.
■ 호소문은 또 "막장이란 단어의 '막'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 사용하는 용어"라며 드라마든 국회든 희망과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함부로 이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이 무심코 막장 운운하는 얘기를 들을 때 가족들이 얼마나 상심하고 상처를 입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사회가 탄광의 기억에서 멀리 헤쳐나온 탓인지, 당시 조 사장의 호소는 그다지 큰 반향을 낳지 못했다. 그러나'막장에서 캔 기적' 등 찬사가 쏟아진 칠레 구리광산 매몰광부 구조 이후 조 사장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 작업 중 돌연 지하 700m의 갱도에 갇힌 33명의 광부들이 절망과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그들만의'작은 사회'를 질서 있게 운영하며 끝내 희망과 감동을 맛보게 한 힘은 과연 뭐였을까. 다양한 분석과 여러 가지 해석이 쏟아지지만 '광부 특유의 막장정신'을 강조한 한 국내 전문가의 의견이 눈에 띈다. 대표적 탄광촌이었던 강원 태백 출신으로 탄광문학 연구로 원주대에서 석ㆍ박사를 받은 정연수씨는 "깊은 땅속에 갇혀 일하는 광부들은 '제삿날이 같을 정도로' 늘 죽음과 접해 있기 때문에 가정공동체적 책임감과 헌신이 어느 직종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 우연찮게도 69일간의 사투 끝에 마지막으로 생환한 '캡틴'루이스 우르수아는 "우리는 힘이 있었고 정신이 있었고 싸우고자 했다. 바로 우리 가족을 위해서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한 번도 계획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상황을 겪었지만, 광부의 삶이 다 그런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이들의 드라마를 줄곧 지켜본 정씨는 한마디 더 덧붙인다. "막장은 한강의 기적이 시작된 곳이자 광부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들이 캐낸 희망으로 우리가 한때 따뜻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그래서 묻는다. 막장의 희망에 돌 던진 자, 당신들은 누구인가.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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