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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시인 허수경 뮌스터에서 만나다/ "온전히 문학으로 돌아와…두루 안부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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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시인 허수경 뮌스터에서 만나다/ "온전히 문학으로 돌아와…두루 안부 전해주세요"

입력
2010.10.1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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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46) 시인을 만났다. 그가 12년 걸려 고대근동고고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뮌스터대가 있는, 올해로 18년째를 맞은 그의 독일 생활 근거지인 뮌스터에서다. 그러니까 이곳은 시인이 나고 자라 대학까지 마쳤던 경남 진주에 이어, 그가 생애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16일(현지시간) 낮 비가 추적대는 쌀쌀한 날씨에 기차역으로 마중 나온 허씨는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 있었다. 한낮 온도가 40도를 넘는 터키의 보아츠칼레(옛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에서 두 달 동안 발굴 작업을 하다가 이 달 초 독일로 돌아왔다는 그는 감기가 들어있었다.

만날 약속을 정하느라 한국에서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 "두루 안부 전해주세요"라는 말로 답신을 맺곤 했던 그는 첫인사를 나눌 때도 같은 말을 꺼냈다. 이런 당부는 헤어질 때까지 틈틈이 계속됐다. 소설가 신경숙씨를 비롯한 절친한 문단 지인들("신경숙씨가 독일 오면 만사 제쳐두고 찾아가죠."), 집안 생계를 위해 서울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 만난 가수 신해철씨("해철이는 그때도 남달랐어요."),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때 비로소 처음 만난 작가들("황석영 선생님이 선물로 밑반찬을 준비해오신 걸 보고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구나 느꼈어요.") 등 그가 그리운 인연을 하나씩 꼽는 와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제가 한국을 떠나서도 시인으로 살 수 있는 건 가까운 분들과 독자들이 저를 기억해주시는 덕분이에요."

주말이라 붐비는 뮌스터 시내를 잰걸음으로 누벼 중국음식점에 들어선 그는 점심을 먹으며 기자가 경유해온 도시인 슈투트가르트에서 격화되고 있는 기차역 공사 반대 시위를 화제로 꺼냈다. 수령이 오래된 가로수 등 생태 보호를 명분으로 진행 중인 이 시위엔 최근 녹색당 지지율 상승과 맞물려 보수당 연정이 집권하고 있는 독일의 정치 판도를 바꿀 만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은 요즘 그의 화두 중 하나다. "고대 유적에서 발굴되는 양의 얼굴 뼈를 보면 지금보다 훨씬 야생적인 모습이에요. 양이 가축화되면서 스스로 얼굴을 인간에게 호감이 가게끔 점차 바꿔간 것이죠.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일이에요." 그는 올해 초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다섯 번째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에 그동안의 생태적 사유가 많이 들어있다고 부연했다.

독일 국내 정치에서 유럽공동체(EU) 차원의 이슈, 나아가 생태 문제에까지 이르는 그의 폭넓은 관심사는 한국을 떠나기 이전과 이후에 낸 시집들이 어조부터 주제까지 사뭇 다른 모습을 띠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농밀한 진주 사투리로 쓰여져 당시 20대 초반이던 그에게서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을 제 살붙이로 여기는 가난한 선술집의 주모'(소설가 송기원)를 보게 만들었던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1988), 그리고 젊은 날의 허무와 상처를 절절히 노래한 <혼자 가는 먼 집> (1992)과 독일로 간 이후에 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 <청동의 시간 감자의> (2005)을 비교할 때 그는 한결 서사성과 사회역사적 인식이 강화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 나올 시집에 대한 설명을 마저 청했다. "수다스러워졌달까요. 이번 시집엔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글도 있고, 희곡 형식을 빌려 쓴 시도 있어요. 장르 통합의 욕심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노래의 형식으로 풀 수 있는 주제가 있는 반면, 산문시의 형태를 빌려야만 풀어낼수 있는 주제도 있는 것이죠. 시는 마땅히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시집을 낼 때마다 의도적으로 예전과 다른 시도를 하려고 애쓰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것만큼이나 그의 말에서 떠날 줄 몰랐던 것은 젊은 후배 시인들에 대한 상찬이었다. 특히 조연호 김경주 김민정씨 등 독자적 의미와 감수성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매우 개인화된 어휘로 독특한 질감의 시를 쓰는 시인들을 그는 높이 평가했다. "시를 잘 쓰는 후배들이 많아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한국에선 웬만큼 잘 써서는 좋은 시인으로 대접 받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그는 2006년 박사 과정을 마친 뒤에는 뮌스터에서 버스로 30분쯤 걸리는 작은 도시 알텐베르게의 자택에서 주로 글을 쓰고 있다고 근황을 말했다. 학생 시절 논문 지도교수였던 독일인 남편이 이끄는 발굴팀에 참가해 매년 여름 터키에 가는 것을 빼면, 읽고 쓰는 전업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학위를 받은 뒤 교수직을 얻기 위한 공부를 더 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는 문학을 선택했다.

"온전히 문학으로 돌아오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밤 9시,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택시를 타면서 그는 이 말과 함께 작별을 고했다.

뮌스터=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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