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이언스 에세이] 생물학자와 생명 존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언스 에세이] 생물학자와 생명 존중

입력
2010.10.17 12:03
0 0

"살아 있으라, 살아만 있으라." 시인 기형도의 죽음을 두고 평론가 김현 선생이 썼던 글의 제목이다. 삶과 죽음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주제는 없다. 정치도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힘이 있다.

생물학자로서 가장 힘든 때는 살아 있는 것을 희생해야 하는 때이다. 그 순간이 가장 두렵고 생물학에 회의가 드는 때이다. 하지만 생명 현상의 비밀을 밝히려면 생명 자체를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껏 이 업을 이어오고 있다.

유럽은 동물 실험의 절차를 매우 엄격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연구실에 들어가기 전에 나라에서 지정하는 동물 실험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함은 물론이다. 교육 내내 가르치는 것은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인데,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실험에 사용하는 동물을 희생시켜야 하는 경우 반드시 법으로 정한 가장 '인간적' (고통 없는)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동물마다 이 방법은 정해져 있다. 또 '동물을 희생한 일을 연구실 밖에서 재미 삼아 떠벌려서는 안 된다' 등이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 하나는 생물학자들이 사용하는 생쥐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아니라 수백년 간 실험실에서 실험을 목적으로 따로 길러진 실험종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없다. 이는 더 넓게 자연계를 대상으로 하는 생태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생물학자는 기본적으로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사람들이지 자연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실 유럽의 프로토콜 정도는 지켜야 문명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추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인체 해부 후에 못된 짓을 한 의대생들이 있는 곳, 경제 논리 앞에 자연의 훼손 정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다니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시험관 아기의 아버지 영국의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에게 돌아갔다. 85세 고령의 에드워즈 박사는 너무 늙어 인터뷰를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에드워즈 박사의 실험은 이후 생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다. 인간 초기 배발생의 분자적 기작 연구는 그의 인공 수정법을 통해 확실히 진일보하였고 복제양 돌리와 배아 줄기 세포학도 그의 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상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종교계를 비롯하여 그의 연구가 가져다 준 사회적 기현상들을 우려하는 시선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이것이 그의 노벨상 수상에 상당한 장애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체외 수정으로 동성애 부부가 유전적으로 보존된 아기를 가질 수도 있으니 전통적 개념의 가정이 도전을 받고 있고 대리모가 가능하기까지 하니 인권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학의 연구 성과를 응용할 때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을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물론 과학자들이 연구 성과의 파급을 다 예견할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연구의 시작과 목적은 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연구실에서부터 생명 윤리를 확고히 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부터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 국제적 기준의 생명 윤리 프로토콜을 준수하도록 하고, 일반인들은 과학자들이 함부로 생명을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해야 할 것이다. 생명 존중 사상은 그 사회가 얼마나 선진적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