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이폐지하여 지금 책방에 나와있는 ‘논어’ 번역서들은 모두 폐기처분되어야 마땅합니다.” 1992년 국내 최초로 ‘묵자’를 완역하고 지금까지 10여 권의 동양 고전 해설서를 출간한 재야 한학자 묵적 기세춘(75ㆍ사진)씨의 (바이북스 발행)는 ‘논어’ 해석에 대한 비판적 해설서다.
그는 “수많은 ‘논어’ 해설서들이 나와있지만 제 입맛에 맞는 처세훈을 설파하는 자기계발서 혹은 자본주의적 교훈담으로 왜곡된 책들이 대부분”이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기씨는 “2,500년 전의 문서를 오늘날의 기준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많은 학자들이 공자가 살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와 현대의 문화, 언어 등의 차이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아 ‘논어’에 대한 왜곡된 해석이 난무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는 엄연한 신분계급사회였고 공자는 그 질서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음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 이런 문제가 빚어졌다고 본다.
기씨는 ‘논어’뿐 아니라 ‘맹자’ ‘순자’ ‘한비자’ ‘좌전’ ‘예기’ 등을 비교ㆍ분석하는 문헌학적 방법으로 공자 사상의 원형 찾기에 나선다. 예를 들어 흔히 ‘사람다움’으로 해석하는 ‘인(仁)’을 그는 ‘지도자다움’ ‘귀족다움’으로 번역한다. 피지배계층인 민(民)이 반(半)노예 상태였던 2,500년 전의 보수적 지식인이었던 공자의 말 ‘인자인야(仁者人也)’에서 인(仁)을 사람다운 것, 혹은 백성다운 것, 혹은 아랫사람다운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그는 이 구절을 “인(仁)이란 지도자다운 것”으로 풀이한다.
따라서 기씨는 공자를 기존 체제와 타협하지 않은 진보적 사상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도올 김용옥의 ‘논어’ 해석에 대해 “황당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공상만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공자가 진보적이라면 그의 보수주의를 비판했던 묵자, 장자, 한비, 여불위 등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야 할 것”이라며 “공자는 난세의 원인을 구체제의 낡음에서 찾지 않고 구체제의 문란에서 찾은 보수주의의 원조”라고 강조했다.
기씨는 오랫동안 통일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던 진보 성향의 재야 지식인이지만, 지배자를 위한 통치사상이거나 민중을 위한 저항사상이거나 똑같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복례(復禮ㆍ예를 되찾음)’로 상징되는 공자의 보수주의는 나라와 가문을 민생보다 우선시했지만, 귀족들의 권력 분점을 반대하고 신본주의(神本主義)를 인본주의(人本主義)로 개혁하려 했다는 점에서 ‘건전 보수’”라며 “우리는 공자의 엘리트주의와 묵자의 민중주의를 모두 흡수해 사회의 원심력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는 한 지배관계는 어쩔 수 없는 원죄”라는 그는 “그렇게 개혁적이고 비판적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논어만은 종신토록 읽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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