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현대차 로비 의혹 사건에서부터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까지. 무려 4년 넘는 시간 동안 그는'죄인'이어야 했다. 그것도 해외 투기자본과 짜고 국내은행을 헐값에 넘긴 매국 관료라는 낙인이 찍힌 채.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것은 당시로선 불가피한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 없었다. 누구보다도 잘 나갔고, 누구보다도 자존심 강했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그렇게 만신창이가 됐다.
그의 몰락은 공직사회에 '변양호 신드롬'을 불러왔다. 관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몸을 사리고 총대를 메기를 꺼려하게 된 것. 경제부처 한 공무원은 "누구보다도 소신껏 정책을 폈던 선배가 바닥도 없이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참 허망했다"며 "전면에 나서봐야 결국엔 본인만 손해라는 복지부동 분위기가 팽배해진 게 사실"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대법원은 론스타와 공모해 고의로 자산을 저평가하고 부실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헐값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혐의로 기소된 변 전 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작년 9월 현대차 로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데 이은 것. 대법원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결하기 위한 직무상 신념에 따른 정책 선택과 판단의 문제여서 배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지난 4년여간 그와 공직사회가 입은 상처는 너무 깊었다. 그래서 그가 무죄 선고 직후 밝힌 일성도"앞으로 나로 인해 생긴 '변양호 신드롬'이 하루 빨리 해소돼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의 현재 직함은 국내 1호 사모펀드인 보고펀드 대표. 지난 2005년 엘리트 관료의 길을 접고, 토종펀드를 만들어 론스타 같은 외국금융자본에 대항하겠다며 세운 회사다. 그는"재판이 진행되면서 법적 공방 등 문제 때문에 보고펀드 일에 더 집중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가 이제 아픈 상처를 뒤로 하고 '한국판 론스타'를 키우기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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