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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택의 핫 코트] <6> ‘이형택이 죽어야 한국테니스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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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택의 핫 코트] <6> ‘이형택이 죽어야 한국테니스가 산다’

입력
2010.10.1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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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1년여 만에 선수로서 다시 라켓을 잡았습니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코트지만 가슴에 고향 강원도 마크를 달고 경기장에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뭉클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열린 제91회 전국체육대회에 강원대표로 테니스 경기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은퇴한 제가 다시 코트에 나서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전국체전에서 테니스 단체전에 나가려면 최소 2명의 선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강원도 팀의 등록 선수론 안재성(오크밸리) 1명뿐이어서 참가자체가 불가능해지자 제 이름이 막판에 명단에 올라간 것입니다. 제 고향은 강원 횡성입니다. 1993년 춘천 봉의고 2,3학년 재학시절 전국체전에서 고등부 테니스 2연패를 끝으로 강원도 대표를 마감한 뒤 17년 만에 전국체전에 출전한 것입니다.

물론 이왕 대회에 나선마당에 ‘끝을 보고 싶다’는 승부근성도 발동했습니다. 또 제가 운영하는 테니스아카데미에 대한 강원도와 춘천시의 지원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과연 통할까’라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짐을 꾸릴 때부터 부담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형택이라는 이름 석자를 더럽히는 졸전 만은 피하자는 생각으로 편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나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합을 거듭할수록 예전의 기량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후배들의 기량이 은퇴한 저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1년 전 은퇴하면서 다짐했습니다. 만일 제가 테니스에서 이뤄 놓은 게 있다면 후배들이 그것을 발판 삼아 저를 능가하는 선수로 성장하도록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테니스계에서 ‘선수 이형택’으론 하루빨리 잊혀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은퇴 후 저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런 뉴스를 접하다 보니 결코 즐겁지 만은 않았습니다. 이번 전국체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잘해서 이겼다기 보다는 후배들이 저를 아직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척 서글펐습니다. 다시 한번 간절히 바랍니다. ‘이형택의 테니스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후배들이 나와 제 이름이 다시는 코트에서 불려지지 않기를 말입니다.

이형택 테니스 아카데미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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