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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 하객 아르바이트 해봤더니

입력
2010.10.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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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친구분들, 사진 찍으러 앞으로 나오세요"

사람들 눈에 띌까 봐 결혼식장 뒤편 구석에 서있다 재차 부르는 소리에 앞으로 걸어나갔다. 신랑은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피했다. 어색하기는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단상 맨 뒷줄에 섰다. 신랑 친구들은 15명 남짓. 이중 10명 이상이 신랑과는 초면인 사이다. 하지만 다들 익숙한 듯 45도로 몸을 틀어 포즈를 취했다. 이때 사진사의 농담 한 마디에 신랑의 얼굴이 벌개졌다. "여기 오신 분들 친구가 아니라 알바(아르바이트)인가 보죠. 웃으세요, 초상집도 아니고."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결혼식장. 앞으로 10분 후 있을 예식을 앞두고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10여명의 남자들이 한 쪽 구석에서 얼굴을 맞댔다. 하객 아르바이트생들이다. 결혼식에 사람이 적게 올 걸 염려하는 신랑 신부들이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 친구나 친척으로 둔갑시켜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걸 "'그래도 결혼식에는 친구가 많이 와야 돼'라는 한국사회의 허례허식이 낳은 진풍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가 직접 하객 아르바이트를 신청해 찾아가 보았다.

"다들 기억 잘해두세요. 오늘 결혼하는 신랑은 나이가 37세고요. 누가 물으면 회사 동료라고 하시면 됩니다. 보통 신랑 친구들은 식장 뒤편에 서 있으니까 의자로 가서 앉지 마시고요. 중요한 건 절대 들키면 안 됩니다" 결혼업체 매니저인 오모(35)씨는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말소리를 낮췄다. 오씨는 "마지막에 사진 찍을 때 같이 안 찍으면 돈 안 드립니다"며 "신랑 측에서 식사는 제공하기로 했습니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뜬 하객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면 '밥 유(有)' 또는 '밥 무(無)'로 표시돼 있다. 하객 아르바이트가 세 번째라는 박모(35)씨는 "피로연 식사비용이 개인당 3만~5만원 정도 하는데 신랑 측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밥까지 제공하는 건 싫어하기 때문"이라며 "돈 받고 하는 하객이지만 '밥 무'라고 해놓은 걸 보면 야속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오후 3시 식이 시작되자 다들 흩어졌다. 예식이 진행되면서 누가 말이라도 걸까 봐 긴장이 됐다. 혹시라도 신랑의 지인이 뭐라도 물으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신랑에 대해 아는 건 이름과 나이가 전부였다. 다른 곳에서는 졸업한 학교와 전공, 직업 정도는 알려줬었는데 매니저 오씨는 이날 "신랑 신상에 대해서는 일절 말해 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식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진짜 하객들은 친척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생 이모(32)씨는 "오늘 고용된 인원이 10명 정도인걸 보면 신랑이 신부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며 "사실 결혼식에 친구가 많이 안 오면 인간관계가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지 않느냐"고 신부 측을 쳐다보았다.

주례와 축가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입구로 걸어 나오자 아르바이트생들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우르르 달려들어 폭죽을 터트렸다. 폭죽은 예식 전에 오씨가 나눠줬다. 신랑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이날 아르바이트생이 한 시간 동안 예식에 참여하고 받은 돈은 1만7,000원. 교통비와 예식장까지 오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아르바이트생 김모(33)씨는 "한 때 노량진에서 생선가게를 했었는데 지금은 백수"라며 "토요일에 노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하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다음 주 예식도 참여할 예정이다.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하객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는 한 대학생은 "남도 축하해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 아니냐"며 흡족해했다. 매니저 오씨는 "자신에게 하객아르바이트를 의뢰하는 결혼업체만도 10여 곳에 달한다"며 "하객아르바이트를 의뢰하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이날 피로연에서 식사를 하다 신랑과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하게 됐다. 사회자가 피로연 장소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인 줄 모르고 우리를 모두 일으켜 세운 다음 하객 사이를 돌고 있는 신랑, 신부에게 인사를 시킨 것이다. 신부가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활짝 웃었지만 신랑은 불편해 보였다. 문득 신랑이 먼 훗날 추억을 더듬으려 결혼식 사진을 보다 우리를 발견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증이 일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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