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이른 아침. 출근길 차량들로 꽉 막힌 밀라노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1시간 반쯤 달렸을까.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물러나고 북쪽으로 만년설을 머리에 인 알프스산맥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말로 관문을 뜻하는 포르타 팔라조에 들어서자 유럽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의 활기가 발길을 잡는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주도 토리노. 알프스 자락에 넉넉한 강 줄기를 끼고 앉은 형세가 풍수 문외한의 눈에도 영락없는 배산임수다.
명당 바람인가, 1861년 통일 이탈리아의 첫 수도였던 이 곳은 도시의 상징인 몰레 안토넬리아나(현 국립영화박물관) 같은 문화유적 말고도 자랑거리가 넘친다. 초콜릿과 마티니, 명품 커피 라바짜의 고향이자, 명문 축구클럽 유벤투스의 연고지이며, 밀라노 못지않게 패션과 디자인 산업도 발달했다. 그러나 지난 세기 토리노의 고정 수식어로 통한 ‘피아트의 도시’ 앞에선 이 모든 것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피아트(FIAT)는 1899년 설립 당시 이름인 ‘이탈리아 토리노 자동차 공장’(Fabbrica Italiana Automobile Torino)의 머릿글자를 딴 것. 피아트가 이탈리아 자동차 생산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번성하자 남부의 농촌 인력이 줄지어 이주해 한때는 피아트 직원이 토리노 전체 인구의 20% 가까운 25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피아트가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남부나 국외로 옮기면서 토리노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실업률이 치솟자 엑소더스가 이어졌고 범죄도 늘었다.
내년 통일이탈리아 150주년을 맞아 관련 행사를 주관하는 이탈리아150위원회 사무총장 파올로 베리씨는 “과거 ‘왕의 도시’였던 토리노는 통일 후 로마 천도로 대혼란에 빠졌는데, 그때 피아트가 등장해 왕의 역할을 대신했다”며 “그런 피아트에 기댈 수 없게 되면서 토리노는 1990년대 초 도시의 틀을 기초부터 새로 짜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장 시급했던 것은 비어버린 공장 지구의 정비. 토리노 남부 링고토 지구에는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산업건축의 백미”라고 상찬한 피아트의 옛 공장이 남아있다. 길이 507m 너비 80m에 달하는 규모도 놀랍지만, 5층 건물 옥상에 올라앉은 자동차 주행시험 트랙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1982년 공장이 문을 닫은 뒤 흉물이 될 뻔했던 이 건물은 세계적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손을 거쳐 호텔과 콘서트홀, 쇼핑몰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옥상 양편에 하늘로 날아오를 듯 솟은 아넬리 미술관과 첨단 회의장은 토리노의 새 랜드마크가 됐다. 헬기 이착륙장을 꼬리에 단 우주선 모양의 회의장을 지키던 경비원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시절 G8 회의가 여기서 열렸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영고성쇠의 역사를 품은 채 새로움을 모색하는 링고토 식 개발은 피아트의 도시에서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토리노의 도시재생사업을 관통하는 화두다. 전세계 미식가들이 즐겨찾는 링고토 지구의 명소인 식재료 마켓 겸 식당 ‘이탈리’는 오래 전 문 닫은 베르무트 주류 제조공장을 개조해 쓰면서 2층 한 켠에는 옛 주조기구 등을 전시한 박물관까지 운영한다.
도심 곳곳에도 옛 철도정비창이나 교도소 등 흉가 같은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토리노가 ‘디자인의 도시’를 표방하지만 여전히 잿빛 이미지가 강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그러나 건축가 마라 세르베토씨는 “낡은 공장도 역사적, 건축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이라며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고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도소와 마주한 법조타운 앞 놀이터에 아이들과 놀러 나온 30대 주부 다닐레씨도 “교도소는 어릴 적부터 보던 것이라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토리노 도시재생사업의 또 다른 과제는 다양한 부심을 갖춘 멀티플 도시를 만드는 것. 베리 사무총장은 “탁자에 비유하면 과거 토리노는 피아트라는 다리 하나밖에 없었다. 앞으론 문화, 관광, 교육, 금융 등 여러 개의 다리를 세워 어느 하나가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탁자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 도심을 갈고리 모양으로 휘감아 놓여져 빈부격차의 골이 되기도 한 철로를 지하화하고그렇게 확보한 공간에 주택단지와 업무, 여가 시설을 조성해 새로운 도심 축을 만드는 스피나(‘중추’라는 뜻) 1~4단계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피아트 본사가 위치한 미라피오리 지구를 자동차디자인을 비롯한 자동차산업 및 첨단정보기술 클러스터로 특화하려는 계획도 새로운 부심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와는 별개로 포르타 팔라조 지역에서 추진된 ‘더 게이트 프로젝트’는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가 목표다. 동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난전이 늘고 범죄율도 높았던 이 지역에 토리노시는 ‘Living not Leaving’(떠나지 말고 살기)이란 기치를 걸고 난전 합법화, 치안 강화 등을 추진했다. 이민자 출신 상인들이 여전히 마뜩잖은 일부 이탈리아 상인들은 “전기료, 청소비만 오르고 벌이는 줄었다”고 불평을 했지만, 시민들은 반겼다. 매일 아침 4~5km를 걸어 장을 보러 온다는 60대의 엔조씨는 “대형 마켓보다 물건이 싸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인들과 신뢰가 쌓여 마음 놓고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엄청난 예산이 드는 토리노의 중장기 프로젝트들이 큰 무리없이 진행된 것은 여론 수렴을 거친 철저한 준비작업의 결과다. 시가 1998년부터 2년 간 2,000명이 넘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2000년 내놓은 1차 전략계획의 비전 1호는 국경에 접한 지리적 이점 등을 살려 위성도시들을 아우르는 ‘인터내셔널 메트로폴리탄’을 지향한다는 것. 이 계획에 따라 추진한 2006 동계올림픽, 2007 유니버시아드 등 굵직한 국제행사의 유치에 성공했고, 2006 세계 책의 수도(유네스코), 2008 세계디자인수도 시범도시(국제디자인연맹)로 선정돼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시와 토리노국제협회, 투자유치단, 민간기업 등 각 주체들의 긴밀한 협력은 큰 원동력이 됐다.
토리노는 2002년에 향후 20년을 목표로 한 2차 전략계획을 내놓고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등 유럽의 옛 공업도시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성공을 말하기에 이르다. 잿빛 이미지를 완전히 벗지 못한데다, 도시 곳곳에 비죽 솟은 타워크레인이 뿜어내는 소음과 공해에 눈살을 찌푸리고 고층건물들이 바꿔놓을 스카이라인을 걱정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내가 어릴 적 토리노는 너무 위험하고 조용하고 심심한 도시였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도시재생사업에 청춘을 쏟았다는 베리 사무총장의 말에서 거리마다 내걸린 표어에 응축된 토리노의 의지가 느껴졌다. ‘Torino, always on the move.’
토리노= 글ㆍ사진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 인터뷰/ 공공디자인 컨설턴트 파올로 지니 건축가 마라 세르베토
토리노에 이어 2010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선정된 도시는 바로 서울이다. 서울시와 한국디자인재단 등 관련단체, 산업계가 합심해 다양한 행사를 열고 ‘디자인 서울’ 만들기에 애쓰고 있지만 이를 체험하고 공감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WDC 프로젝트가 틀을 갖추기 전에 시범도시로 선정돼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던 토리노의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들어봤다.
2008 WDC 토리노 조직위원회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공공디자인 컨설턴트 파올로 지니씨는 “삶의 질을 높이는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1년 내내 거리, 학교, 전시장 등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어 일단 시민들이 디자인을 많이 접하고 느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예술작품만 고집하던 아넬리 미술관에서 디자인 전시회를 처음 열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토리노는 이미 자동차 디자인의 메카이고 모자회사 보르살리노 같은 명품 디자인 회사들이 많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적었지요. WDC를 계기로 토리노의 디자인산업 잠재력을 재발견하고 대외적으로 알린 것도 큰 성과였죠.”
지난 2월 WDC 서밋 참석차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흔히들 WDC 선정을 디자인 도시로 인정받았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는데, 디자인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너무도 멀고 힘들다”며 지속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건축가 마라 세르베토씨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도시디자인 총괄팀으로 활동했고, 2011년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 행사에도 참여한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건축가대회에 참석, 올림픽 디자인에 관해 발표하기도 한 그는 “모든 도시 공간이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알고 소통하는 도구가 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소개했다. 그는 도시 디자인을 “자기장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영향을 주는 무엇”이라고 정의하면서 “따라서 여러 요소들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르베토씨는 서울의 도시 디자인에 대한 평가도 조심스럽게 밝혔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자연환경은 무척 아름다운 도시인데, 제각기 건물을 지어 조각나고 무거운 느낌입니다. 찢어진 천들을 꿰매주는 작업이 필요해요. 너무 큰 도시여서 하나의 큰 해결책보다는 여러 개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도시의 잠재적 아름다움이 표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토리노= 이희정기자
■ 토리노의 야망
“2011년 토리노에 오지 않는 자, 한 해를 잃으리라. 또한 이탈리아를 잃으리라.”
내년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 중인 토리노는 행사 안내 리플렛 표지에 이렇게 썼다. 그 당당함의 이면에는 토리노의 한이 서려있다. 토리노는 16세기 이래 사보이 공국과 그 뒤를 이은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였다. 사르데냐의 주도로 통일이 이뤄져 토리노는 자연스레 통일 이탈리아의 첫 수도가 됐지만, 그러나 그 영예는 4년에 그쳤고 1870년 로마 천도 이후엔 변방으로 밀려났다. 통일 150주년 행사는 토리노가 그 오랜 설움을 벗고 다시 이탈리아의 중심에 서겠다는 야심찬 의지가 담겨있는 것.
내년 3~11월 열릴 예정인 전시회들의 주제만 봐도 ‘이탈리아의 업적’ ‘아름다운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천재에서 화가로’ 등 자긍심을 불어넣는 것들이다. 특히 젊은 세대를 주 타깃으로 삼은 것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여전히 토리노를 피아트의 도시로 기억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항변의 뜻도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150위원회의 파올로 베리 사무총장은 “여러 행사를 통해 국제적으로는 토리노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면서 “정관계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할 자리에서 토리노가 통일 이탈리의 첫 수도였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고 이탈리아의 미래를 이끌 능력이 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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