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보다 핫한 캐릭터가 있을까. 간드러진 목소리로 “나 구용하야~”라며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KBS 월화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여림 구용하 얘기다. 꽃무늬 비단 옷을 입고 구름 위를 걷듯 사뿐 대며 윙크를 날리는 곱상한 선비 앞에 여심은 맥을 못 춘다. 눈치는 100단에 능글맞기는 능구렁이도 울고 갈 정도. 임금이 내준 과제보다 자기가 잃어버린 수제 자금성을 되찾는 데 더 목을 매고, 예쁘장한 동기생인 김윤식(박민영)이 여자임을 밝히는 데 오감을 집중한다. 도대체 성균관 유생이라는 저 사람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을까 싶다. 그래서 돋보인다. 밋밋한 성균관의 소금 같은 존재기에. 원작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속 구용하를 완벽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는 배우 송중기(25)를 11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작인 ‘산부인과’를 촬영할 때 캐스팅이 확정됐고, 이후 원작 소설을 읽었다. 시청자들이 맘을 뺏겼듯 그도 처음부터 구용하라는 캐릭터에 끌렸다. 그는 구용하의 가장 큰 매력을 “어사무사(於思無思)하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긴가민가하고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는 뜻.
“드라마의 전체적인 콘셉트보다 용하에게 빠져버렸어요. 캐릭터만 보였죠. 사극 캐릭터인데 색기도 있고,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 모를 모호함에 천진한 듯 진중하고 여성스러운 듯 남자다운 이중적인 성격도 좋았어요.” 회사에서는 로맨스가 없기 때문에 비중이 낮다고 하지 말자고 했지만, 그는 여배우와의 로맨스를 떠나 이 캐릭터를 키워보고 싶었다.
그는 원작을 읽은 시청자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한다”며 “디테일한 설정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했다. “예를 들면, 다른 인물들은 주로 가만히 서서 얘기하지만 용하는 가만있질 않아요. 서성이든 누굴 만지든 손에 든 소품을 만지작거리든 하죠.” 그가 늘 손에 들고 있는 소품으로는 부채, 육포, 깃털, 기생의 한복 저고리 등 다양하다.
그는 “솔직히 드라마 들어가기 전에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너무 독특한 캐릭터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모여 대본 읽을 때까지 콘셉트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은 벤치마킹. “뒤뚱뒤뚱 하는 걸음걸이나 걷는 도중에 한 바퀴 도는 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을 참고했어요. 이런 손모양도요.”그가 덩실거리는 어깨춤을 연상케 하는 특유의 손짓을 하자 브라운관 속 구용하가 현현됐다. 그는 이 밖에도 영화 ‘동방불패’의 이연걸과 ‘전우치’의 강동원의 이미지도 빌려왔다.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인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데뷔했다. 학점은 4점대부터 학사경고까지 다이나믹하다. 데뷔하기 전부터 ‘성대 얼짱’이라 불리며 입소문을 탄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제의는 받았지만 연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2007년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점점 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엑스트라로 몇 번 출연하면서 촬영 현장에서 느낀 생동감은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대학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했던 그였지만 숫기가 없었는데 연기를 시작한 후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2008년 영화 ‘쌍화점’의 호위무사로 데뷔한 그는 “첫 작품이 ‘쌍화점’이었던 건 행운”이라고 했다. 배우로서 변치 않을 롤 모델인 조인성을 만났기 때문. 그가 기억하는 조인성은 ‘겸손한 톱스타’였다. “한번은 제가 보고 있는 대본을 뺏더니 ‘니 대사가 얼마나 된다고 대본보고 있냐’며 막내 스텝까지 이름 다 외우고 오라고 하더라”며 “배우로서의 기본 자질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는 국가대표도 꿈꿨던 쇼트트랙 선수였다. 한계를 느끼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흥미가 생겨 연기에 도전한 지 3년 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엄친아’가 따로 없다.
연기는 물론 생방송 가요프로그램의 MC에, 버라이어티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는 그는 “체력이 부친다는 걸 느낀다”며 “팬들이 보내준 홍삼과 영양제를 항상 먹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예능도 놓칠 순 없다. 몸은 힘들어도 생방송의 긴장감을 즐기고 놀다 온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그의 활력소이기 때문.
그는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드라마가 “매력을 잃고 청춘 드라마로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극이다 보니 정치적인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시대의 정치 현실이 지금 상황과 비교가 되니까 교훈을 주더라고요. 꽃미남만 나오는 청춘 드라마가 아니라 깊이가 있는 드라마라 다행인 것 같아요.”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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