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이슈(Big Issue) 코리아' 10월호가 나왔습니다."
12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앞. 미국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표지 모델로 나온 잡지를 든 홍삼용(65)씨가 삼삼오오 교문으로 향하는 학생들에게 말을 건넨다. 빨간색 조끼 유니폼 차림의 그가 손에 쥔 잡지는 '빅이슈 코리아'. '빅이슈'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1991년 영국에서 처음 만든 월간 잡지로, 국내에서는 7월5일 창간됐다. 한국을 포함, 전 세계 36개국에서 발매되는 이 잡지는 회원사 간 공유되는 컨텐츠와 외부기고, 자체 취재 내용으로 구성된다. 창간 100일을 맞은 이날 창간부터 지금까지 '빅이슈 코리아' 판매사원(빅판)으로 일해 온 홍씨를 만났다.
"세상을 등지고 싶었지. 내 모든 것이라 여기던 아내를 잃었으니까." 그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혔다. 아내가 온 몸에 암이 퍼져 손 쓸 방도가 없다는 의료진의 말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보다 건강했던 아내는 암 판정 두 달 여만인 1998년 5월8일 새벽 그의 곁을 떠났다.
아내를 만난 것은 군 복무시절. 아내로부터 받은 위문편지가 오작교가 돼 1970년 배필이 됐다. 리어카 행상으로 시작해 갖은 고생을 했지만 잉꼬부부란 소리를 들으며 남부럽지 않았다. 알뜰히 모은 돈으로 동대문구 휘경동에 작은 슈퍼도 마련했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 후 그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 일주일 동안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는 등 세 번이나 자살도 시도했지만 '질긴 게 사람 목숨'이라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 그는 가슴 한 켠에 아내의 사진을 품은 채 서울역, 거리 공원, 노숙인 쉼터 등을 전전하며 십 여 년을 보냈다. "2007년 11월이었지.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 10여 년간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아내의 사진을 찢은 그는 노숙인 다시서기 센터를 찾아 재활에 나섰다. 센터 관계자에게 한국에서도 '빅이슈 코리아'가 창간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주저 없이 판매사원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행인들 상대로 잡지 소개하는 일이 참 어색했는데 이젠 잘 팔지. 남들이 무인도에서도 장사할 사람이라고 할 정도라니까. 허허." 월~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그는 이제 이화여대 앞 새로운 '명물'이 됐다. "점심은 건너뛰는데 학생들이 '굶으시면 안 된다'고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다 줘 고맙지." 이날 10월호를 구입한 주부 최소현(40)씨는 "창간호 빼고는 다 샀어요. 잡지 내용도 재미있고 노숙인 자활도 도울 수 있으니 좋죠"라고 말했다.
빅이슈 코리아 측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총 2만7,000여 부가 시민들의 손에 전해졌다. 창간 당시 10여 명이던 '빅판'은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빅이슈 코리아 관계자는 "얼마 더 판매하느냐 보다 노숙 생활로 사회 적응력이 떨어진 분들이 거리에서 자신감을 찾고 직접 자립 기반을 만들어 가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비 등 월 1,700여 만원을 지원하던 서울시는 내년부터 중앙부처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 줄 것을 건의할 예정이다.
'빅판'으로 거리에 나선 지 3개월 남짓. 자신감과 희망을 찾은 그는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활동할 생각이다. 잡지 한 권(3,000원)을 팔면 구입비용을 뺀 1,600원이 그의 수입이 된다. 3,000만원을 모으는 게 그의 목표다. "장사에는 자신 있으니 작은 트럭을 사서 식자재 납품업을 할까 해. 지난달에 200만원 정도 벌었으니 이르면 내년 말쯤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어깨 너머로 '우리는 돈을 구걸하지 않습니다'라고 쓰인 팻말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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