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신 여성 P(31)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 Y씨가 자신을 강간했다며 고소했다. P씨는 검찰조사에서 "Y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협박해 어쩔 수 없이 성관계에 응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이 P씨의 휴대폰을 조사한 결과 협박 메시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문자메시지의 경우 통화내역처럼 외부서버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심하던 검찰은 결국 유일한 증거물인 휴대폰을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로 넘겼다.
디지털 증거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복원한 문자메시지에는 협박은커녕 낯뜨거운 성애의 대화로 가득했다. 삭제한 문자메시지가 복원될지 몰랐던 P씨는 검찰의 추궁 끝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간통사실을 내연남의 처에게 들키자 내연남을 강간으로 무고했던 것. 검찰은 P씨를 무고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법원은 P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P씨의 사례처럼 디지털증거분석에 의존하는 수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대검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검찰이 컴퓨터나 휴대폰 등 디지털기기에 대한 분석지원을 한 건수가 2008년 916건에서 올해 2,000건 이상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휴대폰, 카메라, PDP, 게임기, 전자책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디지털기기가 늘어나면서 아날로그 증거에 비해 디지털 증거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B(32)씨 역시 본인이 남긴 '디지털 지문'에 꼼짝 못하고 붙잡힌 경우다. B씨는 30대 미혼여성의 집에 침입해 금품을 빼앗은 뒤 강간하고, 협박용으로 강간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나 B씨는 재판에서 강간 혐의를 거듭 부인했다. B씨의 카메라에도 파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삭제된 파일을 복구해냈고, 거기에는 테이프가 붙여진 피해자의 얼굴과 복면에 검은 장갑을 낀 B씨의 모습, 성행위 장면 등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결국 B씨는 징역 15년에 전자발찌 10년 부착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디지털기기가 늘어나고 증거를 인멸하는 기술도 발전해 수사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3세대 휴대폰의 경우는 대부분의 기종에서 문자메시지 복원이 가능하지만, 아이폰 등 스마트폰은 아직 파일복원이 불가능하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맞는 복원프로그램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거인멸 기법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전원을 끄거나 잘못된 비밀번호를 넣는 즉시 컴퓨터 내 모든 정보가 삭제되는 시스템이 개발돼 범죄은폐에 악용되고 있다. 이레이저나 디가우저 등 파일을 완전히 삭제할 수 있는 상용 프로그램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대기업 압수수색도 성과를 내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서버 컴퓨터에서 증거물을 찾기란 마치 "태평양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중요 자료에 대해 보존의무를 부과하는 법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디지털수사 전문가 집단을 늘리기 위해 현재 검찰 내부에서만 실시하고 있는 디지털수사자격인정 시험을 외부(한국형사소송법학회 등)로 이관해 일반인도 응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의 안성수 디지털수사 담당관은 "디지털수사 여건 및 기술의 개선은 자칫 사생활 침해 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반면, 범죄수법은 매우 빨리 진화해 따라가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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