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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 1호 여경 꿈꾸는 염진옥 양/ "南서 만난 맘처럼 멋진 경찰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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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 1호 여경 꿈꾸는 염진옥 양/ "南서 만난 맘처럼 멋진 경찰 될래요"

입력
2010.10.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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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님! 아니, 맘(Mom) 오셨어요?" "우리 막내딸 잘 지냈어?"

6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제과점. 서울 양천경찰서 보안과 소속 최순자(47) 경위가 정복 차림으로 들어서자 염진옥(19)양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환한 웃음으로 맞았다. 최 경위의 방문에 손님들의 주문을 받느라 분주했던 손길을 잠시 멈췄다. 쌍꺼풀 진 까만 눈동자, 자그마한 체구가 영락없는 앳된 여고생의 모습. 최 경위를 때론 형사님, 가끔은 '맘'으로 부르는 염 양은 탈북 청소년이다.

중국을 거쳐 2007년 8월 혈혈단신으로 한국으로 건너온 염 양은 2008년 3월 하나원 퇴소 후 경기 안성시에 있는 탈북 청소년 교육기관 한겨레 중ㆍ고교에 다녔다. 한 학기를 지내고 현재 재학 중인 양천구 백암고로 옮겼다. 탈북 청소년들이 모여 지내다 보니 '발전'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염 양은 "남한에 있다 뿐이지 말투나 생활습관 등 북한에서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학업에 대한 열의로 전학을 했지만 학교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탈북 청소년이란 '꼬리표'탓에 친구들은 염 양을 두고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간첩 아니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선입견에 견디다 못한 염 양은 담임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친구들 앞에 섰다. 부모와 헤어지고 한국에 오게 된 과정, 혼자 지내면서 느끼는 외로움,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등에 대해 1시간 동안 설명했다. 교실은 울음 바다가 됐고 이후로 친구들은 누구보다 든든한 우군이 됐다. 염 양은 "단짝 친구 5,6명과는 정기적으로 만나 영화관이나 노래방에 가서 어울린다"고 말했다.

최 경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3월. 염 양의 형편을 전해들은 최 경위는 양천구학원연합회가 운영하는 장학회의 장학금도 받게 해주고 무료 학원 수강도 알선해줬다. 신변보호경찰관과 탈북 청소년이던 사이는 1년 반이 흐른 지금은 '맘'과 '막내딸'로 바뀌었다. 최 경위는 "생사를 모르는 부모를 그리며 사춘기를 보낼 염 양의 처지가 딱하기도 했지만 심지도 곧고 학구열도 강해 딸로 삼았다"고 말했다. 박은지(24) 종길(22) 남매를 둔 최 경위의 막내딸이 된 것이다. 학교 생활부터 속상한 일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화와 문자로 주고 받는다. "진짜 엄마보다 더 살갑게 해줘요"라는 염 양의 말에 최 경위는 "진옥이한테 연락이 오면 아이들이 '엄마, 또 막내딸이야'라고 핀잔을 준다"면서도 함박 웃음을 지었다. 최 경위는 "한 번은 할인점에 옷을 사러 갔는데 '색깔이 별로다''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며 온갖 트집을 잡으며 안 사더라. 나중에 '엄마가 돈 쓸까 봐 그랬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기특하던지…."라며 염 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로를 고민하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선택, 특례 입학한 염 양은 탈북 청소년 출신 1호 여자경찰관을 꿈꾸고 있다. 최 경위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대학가면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나 방과 후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염 양은 "경찰관이 돼서 제가 받은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진옥이 참 예쁘죠? 시집 갈 때까지 제가 잘 돌볼 거에요."최 경위가 막내딸의 손을 꼭 잡았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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