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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정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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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정한 교육

입력
2010.10.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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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친구가 "학술논문 말미에 참고문헌 다는 법을 가르쳐달라"며 연락을 해왔다. 10여 년 전, 명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친구이기에 내친 김에 박사과정을 공부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숙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친구의 아들과 같은 반 학생이 과제를 해오면서 마치 학술논문처럼 참고문헌을 달아 왔는데, 그 과제 덕분에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도 아들에게 참고문헌 다는 법을 가르쳐주려는데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모 능력에 달린 학생 평가

중학생이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참고문헌 달기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사소하지만 중대한 사건이다. 일종의 부정행위다. 선생님은 그 학생을 칭찬하고 상을 줄 일이 아니라, 스스로 과제를 하지 않고 누군가의 힘을 빌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타일렀었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 교육이 산다. 부모나 과외선생의 힘을 빌린 것이 분명한 과제에 상을 주는 것은 학교 존재가치와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그러한 과제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부모의 극성스러움이나 과외선생의 능력을 칭찬하는 격이다. 특히 이는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의 의지를 애초에 꺾어버리는 대단히 불공정한 일이다.

이와 같은 공정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3월부터 고등학교부터 우선 적용하고 4월부터 초·중학교로 확대하고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은 대단히 염려스럽다. 이 시스템에 따르면, 학생들은 각종 수상경력 자원봉사 현장체험 동아리 활동 임원경력 등의 내용을 직접 기록하고 관리해야 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의 활동 결과를 확인하여 승인한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학생 포트폴리오는 대학 입시는 물론, 취업 때까지 따라다니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비교과활동'평가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 다양한 종류의 기형적이고 편법적인 사교육을 양산해낼 것이 분명하다.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활동내용을 작성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것도 경쟁이 심한 우리의 교육현실에 비추어 볼 때에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포트폴리오를 대신 작성하거나 대필 업체를 활용하려는 강한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입학사정관 전형의 서류를 대필해주는 학원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했다. 학원가에서는 이미 명문대 자기소개서 대필은 500만원, 학생이 작성한 자기소개서 수정은 100만원으로 가격까지 형성되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학생 포트폴리오 제도는 자칫 돈 있고 정보력 강한 열성 부모를 만나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충실하게 자신의 스펙을 쌓고 이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학생들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공정한 교육기회와 평가를

물론 정부는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위한 각종 교육정책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자율형 사립고 18곳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내신 최저기준을 없애고, 대학 입시에서 이들만의 특별전형을 늘리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 전형에서 극히 일부 계층에게 사회적 배려라는 명목으로 '동정'을 베풀기보다는, 초ㆍ중ㆍ고 기간 내내 모든 학생들에게 공정한 교육기회와 평가라는 진정한 의미의 배려를 해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훨씬 효과적이다.

문제의 핵심은 학생 개개인이 부모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비교과활동 평가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학생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능력과 재력을 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능력 있는 부모를 두어서 스펙을 잘 쌓을 수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는 공정한 사회와 맞지 않는다. 공정한 교육 없이는 공정한 사회도 없다.

김은주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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