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국내 산업계가 원ㆍ달러 환율하락의 후폭풍에 휩싸이고 있다. 그 동안 누려 온 고환율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릴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해외 생산공장 건설 및 환리스크 헷지(위험회피)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환율변동에 대비해 온 대기업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이미 환율이 손익 분기점(달러당 1,134원) 아래로 떨어져 수출해 봐야 손해인 중소기업의 경우 갈수록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대기업, 내년 사업 구상에 골머리
대표 수출업종인 전기·전자와 자동차, 석유화학 업계는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행히 대부분 기업들이 당장 실적 악화로 연결될 상황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올 3분기까지 벌어놓은 실적으로 올해는 무난히 넘길 수 있다는 것. 문제는 내년이다. 원ㆍ 달러 환율 하락 경향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해 내년 사업계획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자업종의 경우 표면적으로 수출비중이 높아 환율하락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부품과 장비, 원재료 등의 수입 비용은 떨어지므로 상쇄 효과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환율이 하락한다면 원가절감, 구매합리화 등을 각종 대책을 한층 강화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국내 생산 비중이 높은 에어컨, 냉장고 등 백색 가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해외에서 많이 생산되는 휴대전화와 TV 부문은 상대적으로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원화 강세로 반도체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며 “때문에 재고 관리 등을 통해 상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비중이 약 60~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ㆍ기아차 역시 올해 보다 내년을 걱정하고 있다. 이 회사는 높은 수출비중으로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액이 약 2,000억원(현대차 1,200억원, 기아차 800억원) 줄어드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올해 사업계획 시 환율을 현재 환율보다 낮은 1,100원으로 정했기 때문에 올해는 넘길 수 있지만 내년이 걱정이다.
현대ㆍ기아차는 일단 공격 경영으로 돌파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엑센트, 그랜저, 미국에서는 쏘나타 2.0 터보, 쏘나타 하이브리드, 에쿠스, K5 등을 계획대로 출시해 환율로 인한 매출감소를 판매확대를 통해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정유·화학업계 역시 ‘현재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 및 나프타의 단가가 낮아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지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LG화학은 결제 통화 다변화를 검토하고 있고, SK에너는 환대책회의를 상설 운영하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중소기업
그래도 버틸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사정은 심각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87%는 환율 하락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원ㆍ 달러 환율이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으로 평가되는 달러당 1,134원 아래로 내려가 경영난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인천의 한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해외 수출보다 국내 대기업의 구매 여부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승준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원ㆍ달러 환율 하락에 이어 위안화 절상 등 수출 감소 요인이 한꺼번에 나타날 경우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우리 산업 전체가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박상준 기자 burr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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