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헬리콥터가 최근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와 탈레반을 공격하려다 오폭으로 파키스탄 군인들을 희생시키며 비롯된 미국과 파키스탄의 긴장 상황은 난제를 하나 던졌다. 파키스탄이 나토군 보급로를 폐쇄한 후 미국의 공식적 사과를 받고서야 길을 열어준 상황은 미국이 파키스탄에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군의 교두보이면서, 동시에 탈레반의 근거지라는 양면성을 가진 파키스탄. 미국은 파키스탄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파키스탄이 주도권을 쥔, 그야말로 파키스탄이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오폭에 보급로 폐쇄로 대응
지난달 30일 나토군 헬기가 아프간 국경지역인 파키스탄 오라크자이 지역 탈레반을 공격하는 도중 파키스탄 병사 2명이 숨졌다. 이에 파키스탄은 즉각 “아프간으로 향하는 나토군의 파키스탄 토르캄 보급로를 봉쇄한다”고 밝히며 분통을 터트렸다. 탈레반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종종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와 폭격을 가해 온 미군을 향해 강력한 항의를 한 셈이다. 숨통이 막히게 된 미국은 다음날 미 중앙정보부(CIA) 고위 인사를 파키스탄에 파견해 “앞으로 주권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적절한 시기에 개방을 검토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궁지에 몰린 미국은 6일 앤 페터슨 파키스탄 주재 미 대사를 통해 “파키스탄은 우리의 동맹이며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에 사과를 전한다”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곧바로 보급로를 열지 않았고, 9일에야 차단 해제 결정을 내렸다. 파키스탄이 한 치도 지지 않는 게임을 한 것이다.
부실한 동맹 한계 보여줘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10일 인터넷판 보도에서 파키스탄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파키스탄이 진정한 미국의 우방인지 물어야 할 때”라고 전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이면서 탈레반의 근거지인 파키스탄에 ‘무장세력 분쇄’를 주문하다 보니 채찍 보다 당근을 많이 챙겨줘야 했고, 이 같은 선심 외교가 거듭되면서 급기야 미국이 파키스탄에 휘둘리게 됐다는 분석이다.
대미 관계에서 파키스탄이 주도권을 잡은 상황은 사실 양국의 오랜 애증관계에서 비롯됐다. 1950년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파트너가 파키스탄이었고, 파키스탄은 숙적 인도와 맞서기 위해 미국을 받아들였다. 이런 관계는 아프간 전쟁에서 파키스탄의 역할이 막강해지자 더욱 파키스탄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파키스탄은 탈레반 섬멸을 지원하고 미국에게 보급로를 열어주는 대가로 외교적으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당연히 보급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부실한 동맹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향후 아프간과 인도가 손잡는 상황을 우려한 파키스탄이 미국의 전쟁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10일 “전쟁에선 동맹이지만 양국의 목적이 충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관계, 9 11 이후 친구에서 적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 근저에는 파키스탄과 탈레반 저항세력의 복잡한 역사적 인연이 자리하고 있다. 애초 탈레반을 키운 것도, 미국의 요구에 맞춰 탈레반 소탕에 협조하고 있는 것도 파키스탄이다. 탈레반을 향한 파키스탄의 시선이 미묘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주무대로 하는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1979년 12월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려던 미국은 이슬람 무장세력 ‘무자헤딘’을 지원한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대소 항전 전사 양성을 도왔고, 보답으로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80년대 말 미국의 의도대로 소련이 패퇴한 이후 여러 무장 세력들이 난립하는 무정부 상태로 빠진 아프간에서는 90년대 중반 탈레반이라는 신흥 이슬람 세력이 등장해 아프간 대부분 지역을 손아귀에 넣는다. 그 배후에는 아프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한 파키스탄, 그 중에서도 파키스탄 정보기관(ISI)이 중심에 있었다.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의 애정 전선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9ㆍ11 테러 이후다. 아프간 탈레반은 90년대 중반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등 국제 테러 조직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이들의 훈련 캠프를 제공했고, 그 결과가 9ㆍ11 테러라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당황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할 것을 다짐하며 탈레반과 전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파키스탄 정부군이 북서부 스와트밸리를 장악하고 세력을 넓히던 탈레반과 수 개월 간 전쟁을 치러 이들을 몰아내기도 했다. 최근 ISI가 자국의 주적(主敵)을 인도가 아닌, 자생 이슬람 무장세력(탈레반과 그 분파)으로 처음 변경한 것도 파키스탄과 탈레반 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진정 탈레반을 뿌리뽑아야 할 적으로 여기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특히 파키스탄 군부 및 ISI와 탈레반 사이의 끈은 아직 끊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ISI가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 협상을 거부하도록 탈레반에 강요하고, 오히려 공격을 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시각을 반영한다. 더구나 파키스탄 탈레반의 근거지인 아프간 접경 산악지대는 정부의 행정ㆍ군사력이 미치기 힘든 지역일 뿐 아니라 탈레반을 무슬림 전사로 여기는 정서 또한 강한 곳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이 곳에서 탈레반을 궤멸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은 과제인 것이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 자르다리 대통령 인기 추락… '정부-군부' 갈등 심화
미국, 탈레반과의 복잡한 관계에다 대홍수의 재앙까지 겹치면서 파키스탄 정계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이하로 추락했고, 정부와 군부의 갈등이 노골화 하면서 쿠데타 루머까지 나온다.
아사파크 카야니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은 이달 초 자르다리 대통령에게 부패하고 부적격한 장관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전달하고 그들의 해임과 내각 재구성을 요구했다. 파키스탄 정부의 대홍수 대응 실패와 무능으로 내각과 군부 지도자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 8월 최악의 대홍수로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을 때 자르다리 대통령이 한가한 해외 순방에 나서자, 군은 별도로 구호활동에 나서며 민심을 얻었다. 대홍수 직전인 지난 7월 자르다리 대통령의 지지율은 20%였으니, 현재는 이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 뉴스를 전하는 다운미디어그룹의 시릴 알메이다는 “군, 기관 그리고 거리에 있는 국민 누구나 내각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르다리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대법원이 최근 스위스 정부에 “자르다리의 부패 혐의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하도록 법무부에 지시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자르다리는 부인인 고(故)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재직 시절, 내각 각료로서 6,000만달러의 국고를 빼돌려 스위스의 비밀계좌에 예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정부와 군부의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쿠데타 등으로 자르다리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다. 1999년 쿠데타를 일으켜 2008년까지 정권을 잡았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의 사례로 인해 군부가 여전히 조심을 하고 있고, 미영 등 우방들도 위헌적 쿠데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 때문에 무능한 자르다리 정권은 어지러운 속에서도 일단은 권력을 연명해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영국에 망명한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2013년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혀 권력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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