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설치작가 중 한 사람인 전수천(63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가 서울 이태원동 표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흑백 사진에는 두 송이 꽃이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사실 하나는 진짜 꽃이고, 하나는 조화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컬러와 흑백이 반반씩 섞인 화면에 아름다운 꽃들이 빽빽하게 담겼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중 컬러는 생화, 흑백은 조화임을 알아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흑백의 꽃들이 가득한 가운데 딱 한 송이 붉은 꽃이 피어있는 사진. ‘아하, 붉은 꽃은 생화구나’ 생각하는 순간, 전씨가 “저것도 조화예요”라며 웃음을 짓는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사물로부터 차이를 읽다’.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찰자의 인식과 가치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설치 작품의 재료로 쓰려고 조화를 샀는데, 우연히 흑백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마치 진짜 꽃처럼 보이는 거예요.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대해 혼돈이 오더군요. 어지럽고 바쁜 일상에 휘둘려 제대로 관찰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삶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설치작품 ‘잃어버린 미로의 파라다이스’가 전시된 지하 공간은 그야말로 꽃밭이다. 벽과 천장이 온통 조화로 뒤덮인 방 가운데, 황금색 꽃으로 이뤄진 기둥이 우뚝 서있다. 바닥에 설치된 거울에 비친 꽃들을 바라보며 가짜 꽃밭 속을 걷다 보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전씨는 “우리 세대는 신화나 꿈, 파라다이스를 좇으며 험난한 인생 행로를 걸어왔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저 눈 앞의 현실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15량의 열차에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 천을 씌우고 미국 대륙을 동서로 5,500km 횡단한 ‘움직이는 드로잉’ 등 그간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시간과 역사, 민족 등 커다란 이야기를 해오던 전씨가 꽃을 테마로 한 작품을 내놓은 것에 대해 뜻밖이라는 반응도 있다. 내년부터 다시 새로운 대규모 설치작품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전씨는 “관람객들이 예쁜 꽃이 담긴 사진을 보니까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냥 예쁜 꽃 사진으로 봐줘도 좋고, 조금 더 나아가 생활 속 철학이 담긴 작품으로 봐주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11월 6일까지. (02)543-7337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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