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백일장' 안내문을 보면 가슴이 뛴다. 원고지를 받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백일장 시제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 된다.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것에 백일장의 몫이 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경남도 대회에 나갈 진해시 대표를 뽑는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백일장은 나를 꿈꾸게 했고, 나의 습작기는 백일장에서 담금질됐다. 백일장의 유래가 조선 태종 때인 1414년 7월 성균관 유생 500명에게 시무책(時務策)을 시험한 데서 비롯하였다고 하니 무려 600년의 역사를 가진 '문학시험'인 셈이다. 이제는 너무 흔한 행사가 된 백일장에 대해 찬반 양론이 많지만 나는 찬성에 손을 든다.
오랜 역사를 앞세우지 않아도 백일장에는 꿈이 있다. 문학이 외면당하는 시대에 문학을 꿈꾸는 꿈이 있다. 저마다 원고지를 받아들고 주어진 제목에 대해 진지한, 골똘한 표정으로 한 줄 한 줄 꿈의 칸을 채워나가는 어린 문사들을 보면 문학의 씨앗들이 발아되는 것 같아 감동적이다.
예전엔 학교마다 한글날 기념 백일장이 열렸다. 한글날을 기념해 모국어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숨어있는 문학의 인재를 발굴하는 연례행사였다. 이제는 단지 학생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백일장이 열리지 않는다. 학교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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