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는 꾀꼬리대로, 까치는 까치대로, 종달새는 종달새대로 노래하지요.”
40년 가까이 오직 물방울만을 그려온 화가 김창열(81)씨. “늘 똑같은 것만 그리는 게 지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어와 단어 사이 간격이 긴 느릿한, 하지만 또렷한 말투로 이렇게 답했다. “마누라를 여러 사람 바꿀 수 없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그 말처럼 물방울은 김창열씨의 목소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김씨가 지난 8일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대규모 개인전 ‘회귀’를 열고 있다. 길이가 5m에 이르는 1,000호 크기의 대작 두 점이 1층 전시장의 양쪽을 가득 메운 가운데 근작 50여 점이 함께 걸렸다.
가까이서 보면 붓질 몇 번 툭툭 한 것 같은 단순한 형상이지만, 뒤로 물러서면 영롱한 물방울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무판, 모래, 한지 등 다양한 매체가 물방울의 바탕이 되었는데, 가장 많은 것은 천자문의 한자들이다. “1970년대 초 물방울 작업을 시작하면서 헝겊이나 나뭇잎 등 여기저기에 물방울을 그려봤는데 신문지 위에서 효과가 좋았습니다. 신문지는 금세 망가지니까 흰 종이 위에 그렸는데 그림이 안되는 겁니다. 신문의 활자들이 물방울의 질감을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했던 거지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서 천자문과 붓글씨를 배운 나에게 한자는 가장 큰 향수로 남아 있습니다. 한자는 동서남북 전후좌우로 번져나가는 넓이와 깊이, 무궁무진하게 변화하는 힘을 갖고 있지요.”
서울대 미대를 다니다 뉴욕을 거쳐 1969년 파리에 자리잡은 그는 1960년대까지 앵포르멜 운동에 심취했다. 총을 맞아 구멍이 뚫린 형상을 표현한 ‘상흔’, 사람이 찢겨진 듯한 이미지를 그린 ‘제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그림에 처음 물방울이 나타난 것은 1972년. 온통 검정색 바탕 위에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맺혀있는 ‘밤에 일어난 일’이다. 우연히 캔버스 뒷면에 맺힌 물방울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나는 스무살에 6ㆍ25를 아주 격심하게 겪었습니다. 그런 시대의 상흔 하나하나가 물방울이 된 것이겠지요. 물방울은 가장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무(無)에 가까운 것이지만, 깊은 상흔에서 나온 눈물이기에 그보다 진한 것은 없습니다.”
김씨는 파리에 있든 서울에 있든 매일 오전 6시부터 수영을 하거나 산책을 한 뒤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줄곧 작업실에 머무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50, 60대 때와 비교하면 작업하는 양은 반 정도로 줄었지만 작은 작품만 하고 있으면 답답하다”며 작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요즘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은 2년 전에 태어난 손자와 노는 시간. 그는 “원래 1년 중 3~4개월 정도를 한국에서 보냈는데 손자 보는 재미에 한국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 전시 작품을 보면 유독 노란색, 그리고 검정색 바탕이 많다. “바탕 색깔은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정합니다. 요즘이 인생의 황혼이자 황금기니까 자연히 노란색이 나오는 것 같고, 검정은 마지막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유행가 가사 같은가….”
전시는 11월 7일까지. (02)519-0800
글ㆍ사진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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