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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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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

입력
2010.10.1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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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지상에서 남은 일이란 한여름 팔작지붕 홑처마 그늘 따라 옮겨 앉는 일 게으르게 손톱 발톱 깎아 목백일홍 아래 묻고 헛담배 피워 먼 산을 조금 어지럽히는 일 입교당 담벼락에 어리는 흙내 나는 당신을 자주 지우곤 했다

하나와 둘 혹은 다시 하나가 되는 하회의 이치에 닿으면 당신은 당신으로 흐른다

삼천 권 고서를 쌓아두고 만대루에서 강학(講學)하는 밤 내 몸은 차고 슬픈 뇌옥 나는 나를 달려나갈 수 없다

늙은 정인의 이마가 물빛으로 차고 넘칠 즈음 흰 뼈 몇 개로 나는 절연(絶緣)의 문장 속에서 서늘해질 것이다 강물에 목백일홍 꽃잎으로 풀어쓰는 새벽의 늦은 전언 당신을 내려놓는 하심(下心)의 문장들이 다 젖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경주 양동마을에 대한 소식이 나오더군요. 기자는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조용한 시골 마을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으나, 제대로 된 부대시설과 볼거리가 없어서 대부분 마을만 둘러보고 황급히 발길을 돌린다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하더군요. (개그콘서트 동혁이 형 식으로 말하자면) 아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무슨 놀이공원이랍디까? 한복 입고 롤러코스터 타야지 문화체험 잘했다고 말할 겁니까? 오래된 마을에서도 부대시설과 볼거리가 없으면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니. 그렇게 고요한 마을에 가서도 그리운 사람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고 황급히 발길을 돌리는 딱한 사람들이라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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