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하며 땅을 파 들어가던 굴착기가 펑하고 지하 공간에 닿은 걸 느낀 순간, 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 뭡니까.”
검게 탄 얼굴에, 말수가 적고, 손에 못이 박힌 거구의 미국인 굴착기 기사 제프 하트(40)씨. 세계 각지에서 기름과 물을 시추하는 그는 이름없는 기술자지만, 매몰된 칠레 광부 33명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영웅이 됐다. 당초 크리스마스에나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작업을 두달 가량이나 앞당기면서 13일부터 구출이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칠레 정부는 만약을 위해 3개의 구출통로 굴착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왔는데, 하트씨가 주도한 ‘플랜B’가 가장 빨랐다.
넓이 65cm, 길이 625m에 이르는 구출 통로를 완성한 9일, 매몰 광부의 가족들과 친인척들은 그의 주위로 몰려들어 그를 얼싸안고 “고맙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세계 최고의 굴착 기사”로 업계에 알려진 그는 칠레 산호세 광산 사고 현장으로 불려오기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사용할 지하수를 파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 8월 5일 광산 붕괴 사고하자, 칠레 정부는 최고의 굴착 기사를 수소문했다. 미국-칠레가 공동출자한 지오텍 광산회사의 운영 책임자 제임스 스테파닉은 “하트는 구출통로를 뚫는데 쓰이는 T130드릴을 다루는데 세계 최고”라고 그를 불러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하트를 중심으로 꾸려진 굴착팀은 33일간 작업에 매달렸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광산이 엉성하게 만들어진 탓에 굴착기가 광산 곳곳에 설치된 철심에 걸렸고, 장비가 망가지기도 했다. 거대한 자석으로 철심 등 장애물을 빼내느라 작업이 며칠 지연되기도 했다. 금과 구리를 캐내던 이 광산은 규토와 바위도 많아서, 어긋나지 않게 일직선으로 통로를 뚫는 작업 또한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하트씨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뚫는 것과, 기름이나 물을 뽑아내기 위해 뚫은 것은 다르다”며 작업의 긴장감을 표현했다. 이어 “간혹 어긋나기도 했지만, 팀원들이 함께 이겨냈고, 작업을 완료해서 이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칠레 정부는 2~3일간 구출 통로에 금속 선들을 둘러 단단히 하는 작업을 거쳐, 13~15일 구출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라우렌세 골보르네 칠레 광업부 장관은 “광부 1명을 끌어올리는 데 1.5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라며 “15일에는 광부들이 지상에 있게 된다”고 말했다. 광부 구조에 쓰일 1인용 탑승 캡슐은 준비가 완료돼 시험까지 마쳤다. 구조가 시작되면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도 현장을 찾아 국가적 기쁨을 함께 할 예정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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