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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과 함께하는 투자 아카데미] 인간의 본성과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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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과 함께하는 투자 아카데미] 인간의 본성과 경제학

입력
2010.10.10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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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로와 햇빛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1986년 옛 소련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방사능 누출 사고 당시 언론은 이 사건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는 2006년까지 100명이 채 안 됐다. 반면 매년 미국에서만 햇빛 과다노출로 인해 발생하는 피부암 사망자가 8,000여 명이나 된다. 누구도 햇빛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지는 않는데도 말이다.

#. 2001년 9ㆍ11테러는 항공산업에 치명타를 입혔다. 테러 직후인 2001년 4분기 미국 항공사 승객은 1년 전보다 18%나 줄었다. 테러가 사람들에게 ‘비행기=위험’이라는 화인(火印)을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더 안전했을까. 2002-2004년 미국의 비행사고 사망자는 30명으로 급감한 반면, 자동차사고 사망자는 이전보다 5% 늘어난 12만8,525명이었다. 테러로 비행기보다 자동차를 더 많이 이용한 결과였다. 미국 통계학자들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전처럼 비행기를 계속 이용했다면 5,000명이 목숨을 건졌을 것이고, 4만5,000명은 중상을 입지 않았으며 32만5,000명은 경상조차 입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 든 두 사례처럼 확률적 계산을 하면, 실제 느낀 것과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의외로 많다. 판단하는 시점에선 스스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투자의 세계에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장기투자는 인간 본성에 맞는 것일까

투자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얘기가 ‘장기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실제 투자기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봐도 장기투자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금세기 최고의 투자가라 불리는 워런 버핏을 따라하자는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사람들은 그처럼 투자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례로 1980년대 초 버핏은 코카콜라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영구보유 종목’이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버핏은 이 주식을 30년 동안 보유하고 있다. 과연 어떤 투자자들이 30년 동안 주식이나 펀드를 보유하고 있을까.

버핏처럼 3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립식 투자와 같은 방법으로 5년 이상 투자하면, 거의 손실을 보지 않는다는 데이터가 언론에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중은행에서 고객의 펀드 투자기간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투자 기간은 1년6개월에 불과했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시장 급락기가 오면 투자 기간은 더욱 짧아진다.

뇌과학(腦科學)과 경제학을 접목한 신경경제학(풀어읽는 키워드 참조)이나 진화심리학과 같은 학문에선 투자자들의 단기 행태를 ‘인간 본성’의 차원으로 접근한다. 즉 투자자들이 장기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오히려 단기투자에 적합하게 진화해 온 존재다. 이런 전형적인 예가 바로 도박이다. 도박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슬롯머신이다. 슬롯머신이 가장 사랑 받는 이유는 승부가 빨리 나기 때문이다. 결과가 짧은 것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강하다. 사이비 투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군중들을 모아 놓고 종목 찍기를 해 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찍어 준 종목이 내일 상승세를 타면 투자자들은 열광하고 그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바친다. 이런 과도한 믿음은 대개 파국으로 끝난다. 주가가 폭락하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투자의 요체라고 한다면, 주가 폭락기에 사서 폭등기에 팔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반대로 움직인다. 폭락하면 팔고 폭등하면 산다.

사람들에게 주가가 폭락하는 그래프를 보여 주면 뇌의 ‘편도체’라는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편도체는 뇌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복숭아 모양의 조직이다. 자동차가 갑자기 덮치는 등의 위험 상황이나 새롭고 낯선 자극을 받으면, 번개처럼 순식간에 활성화된다. 마치 경보음을 울리듯 말이다. 편도체가 급박한 경보음을 울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위험 상황에 올바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도 사람들은 위험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주가가 폭락한다→위험하다→피해라’라는 연쇄적인 의사결정이 오고, 사람들은 공포감에 주식을 팔아 치운다. 그러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투자니 하는 말은 발붙일 곳조차 없게 마련이다.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다시 도박 문제를 보자. 사람들은 쯧쯧 혀를 차며 어쩌다가 저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중독에 빠졌을까 라는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도박은 쾌감 중추를 자극하는 중독성이 있다. 당연히 병(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그 똑똑한 사람들이 어리석을 정도로 중독에 이르게 됐을까.

그들은 절대 자신들이 돈을 잃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패턴을 연구하고 분석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확신을 갖게 되고, ‘한 번만 더’라는 사고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로또의 꿈을 꾸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 814만 5,060분의 1이고, 길 가다 벼락 맞을 확률은 50만분의 1이다. 로또 1등 당첨은 천둥 번개가 치는 비 오는 날 벼락 16번을 맞을 가능성 보다 어려운 확률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로또 당첨 비결을 소개한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고 거기에 타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수치상으로만 놓고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사고 체계인데도 말이다. 도박이나 로또는 전혀 인간의 통제할 수 없는 확률 범위에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기서 법칙을 찾고 성공의 비결을 찾는다. 주식시장과 같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자 수익을 결정하는 변수에는 ▦마켓타이밍 ▦종목선택 ▦자산배분 ▦투자기간 등이 있다. 이 중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마켓 타이밍이다. 지난 2001년 7월 6일 설정된 국내 최장수 주식형 펀드인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주식형’의 누적 수익률은 현재 약 700%가 넘는다.

그런데 만일 이 펀드의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10일 간 투자하지 않았다면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500%로 떨어진다. 수익률 상위 20일간 투자하지 않으면 360%, 40일이면 180%, 그리고 수익률이 좋았던 50일을 제외하면 140%대로 쪼그라든다. 6년이 넘는 2,278일 동안 이 펀드의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50일을 제외한 수익률은 그대로 가만히 투자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5배 가량 차이가 난다. 과연 이 펀드로 돈을 벌 수 있는 정확한 시점을 누가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종목 선택 또한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제대로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다행스러운 소식이 있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는 ‘통제력’의 관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시장 타이밍이나 종목 선정이 아닌 자산배분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90%가 투자 성과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자산배분은 말 그대로 자신이 갖고 있는 자금을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어떻게 나눠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는 투자기간이 수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5년 이상 투자의 시간 지평(time horizon)을 확보하면 거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이 거치식이든 적립식이든 말이다. 미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1900년부터 2000년까지 100년 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 해에는 최고 53.4%의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반대로 37.3%의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 지평을 넓혀 보면, 매우 일관된 평균 수익률을 보인다. 10년 단위로 넓히면 대부분의 기간에서 5-15%의 평균 수익률을 기록한다. 시간은 투자 수익의 일관성을 만들어 주는 강력한 해법이다.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인 인지과학자인 스티브 핑거 교수는 도박이나 주식시장을 두고 ‘도박기계’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이런 도박 기계적 상황에선 어처구니없는 확률 계산을 한다. 즉, 잘못된 확률적 추론을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확률 추론에 빠질 시장 예측과 같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 스스로 통제 가능한 범위인 자산배분과 투자의 시간 지평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은 투자 성과를 낳는 길이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이사

▦풀어읽는 키워드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란

90년대 들어 뇌에 관한 연구 성과가 쌓이면서 경제학과 뇌과학이 결합돼 탄생한 학문 분야다. 최근 마케팅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자 분야로도 그 지평이 확대되고 있다. 주가 움직임을 보여주고 뇌를 촬영하거나 주식 매매패턴의 차이 등을 분석하는 게 대표적인 연구 사례다.

■ 투자의 왕도는 배짱과 인내심

편도체와 같은 감정중추가 손상된 그룹과 정상인 그룹을 대상으로 한 게임 실험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게임은 20달러를 가지고 시작해서 동전을 던질 때 마다 1달러를 걸 수도 있고 걸지 않고 건너 뛸 수도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임은 모두 20번 계속된다. 이 게임의 승자는 어떤 그룹이었을까. 역설적이게도 감정중추가 손상된 사람들의 성과가 더 좋았다.

정상인들은 특히 돈을 잃은 직후에 주어진 기회의 41%만 판돈을 걸었다. 심지어 돈을 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뇌 손상 그룹은 공포심을 느끼지 않다 보니 주어진 모든 기회에 대부분 판돈을 걸었고, 손실을 입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을 보였다.

결국 뇌가 손상된 사람들이 정상인들 보다 13% 가량 많은 돈을 땄다. 장기투자를 위해서는 공포심과 맞설 수 있는 배짱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최고 부자인 청쿵 그룹의 리카싱 회장은 돈을 버는 최고의 재주로 참을성과 인내심을 꼽는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주식시장의 변덕스러움에 따라 투자를 한다면, 좋은 결과를 낳기 어렵다. 너무 진부한 얘기 같지만 투자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라 자산배분을 하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최소 5년 이상 유지하는 것이 시장의 변덕스러움을 극복하면서 수익을 내는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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