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당사자의 소명절차를 거쳐 내달 초 징계수위가 최종 확정된다지만 중징계 중 가장 낮은 문책경고만 받아도 사실상 업무수행이 어렵다는 점에서 라 회장의 퇴진은 시간문제다. 경영진 사이의 내분으로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이 이미 직무정지된 상태이고 이백순 신한은행장도 직무정지 소송에 휘말려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신한금융그룹 전체가 경영진 공백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처한 셈이다.
3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연륜에 생산성과 수익성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며 2,000만 고객을 거느린 우리나라의 대표적 순수 민간 금융그룹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을 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특히 이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핵심 경영진이 헤게모니 다툼으로 조직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본인들도 크고 작은 의혹과 비리혐의로 수사 혹은 중징계를 받는 자충수를 둔 것은 실로 안타깝다.
금감원은 이런 사태의 발단이 된 라 회장의 50억원 차명계좌 개설ㆍ관리과정을 조사한 결과 라 회장의 직ㆍ간접적 개입과 신한은행의 조직적 간여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 검사과정에서 은행 측의 서류 파기 등 검사 방해ㆍ은폐 행위도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내 금융계의 롤 모델이라는 금융회사에서 최고경영자의 불법이 암암리에 진행됐고 이것이 빌미가 된 자해적 이전투구와 정치권 줄대기가 신한 사태의 핵심이란 얘기다.
우리는 이미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경영진이 모두 퇴진하고 제기된 위법ㆍ비리 의혹을 엄정하고 신속하게 조사 혹은 수사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더불어 우리는 박연차씨 수사 때 나온 차명계좌 의혹을 인지하고도 1년 이상 조사를 미루는 바람에 사태를 키운 금융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본다. 다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경영진 공백에 따른 신한금융그룹의 표류를 막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신한그룹이 머리를 맞대고 과도체제든 새 체제든, 추락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대안을 하루 속히 모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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