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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커버스토리 - 저녁놀 머금은 바오밥나무, 어린 왕자를 부르다

입력
2010.10.0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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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km를 달려 찾아왔다. 이 빛, 이 실루엣에 전율하기 위해서다.

아프리카 대륙 옆에 떠있는 신비의 섬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자연을 간직한 섬이다. 그 마다가스카르를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바오밥이다. 태고에 신이 바오밥 나무를 만들었다. 그런데 나무가 제멋대로 걸어 다녀 화가 난 신은 바오밥을 땅에 거꾸로 박아버렸다. 굵고 긴 몸뚱이 중간엔 가지 하나 없고 머리 위에만 잔가지들이 부수수 얽힌 독특한 생김새에서 나온 바오밥의 전설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모론다바(Morondava)의 바오밥 애비뉴(Baobab Avenue)가 가장 아름다운 바오밥 경치로 손꼽힌다. 특히 석양이 내리는 시간, 가장 황홀한 바오밥의 자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언젠가 사진에서 본 바오밥 애비뉴에는 천조각만 두른 원주민이 거닐고 우마차가 지나고 있었다. 일부러 모델을 불러다 쓴 것인지 실제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꼭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먼 길을 달려갔는데 그 광경을 보지 못할까 걱정도 들었다. 풀석이는 흙먼지를 날리며 마침내 도착한 바오밥 애비뉴. 걱정은 기우였다.

바오밥 애비뉴는 분명 딴세상이었다. 생택쥐페리의 의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 것 같아 싫어했다던 바오밥 나무가 줄지어 섰다. 높은 건 30m를 훌쩍 넘는다. 둥치는 장정 10명은 넘게 팔을 이어야 감쌀 둘레다. 거대한 바오밥의 빌딩들 같다. 갑자기 에 등장하는 소행성 B612에 떨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그 길가엔 현지인들이 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풀잎으로 지붕과 벽을 삼아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공상과 과거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다. 꿈의 스크린 같다. 바오밥 애비뉴에는 기대했던 우마차도 지났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서성였다. 꿈같은 영화는 ‘레디 액션’ 사인도 없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해질녘 석양의 완벽한 조명이 비춰졌고, 바오밥과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이 어울린 완벽한 구도가 스크린을 채웠다.

햇덩이가 대지에 가깝게 다가갈 수록 석양의 붉음은 더욱 짙게 타올랐다. 노을이 탔다. 바오밥도 함께 타올랐다. 마침내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바오밥은 붉은 하늘로 치솟았다. 노을의 마지막 빛이 번진 마다가스카르의 어둑한 저녁 하늘 한가운데로 바오밥이 솟았다. 오로지 바오밥만을 위한 조명이다. 바오밥이 가장 선명해지고, 당당해지는 순간이다.

모론다바(마다가스카르)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뾰족뾰족 칼날바위에 내 마음도 찔리고…

바오밥의 석양을 되뇌며 모론다바의 밤을 보낸 뒤 이른 새벽 길을 나섰다. 칭기(Tsingy)까지는 하루를 꼬박 달려야 하는 먼 길이다. 마다가스카르의 길은 편하지 않다.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포장길은 바라지도 않는다. 평평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모론다바에서 바오밥 애비뉴까지 가는 15km되는 길의 일부는 포장도로지만 비포장보다도 힘들다. 보수공사란게 한번이라도 있었던 건지 길의 양쪽이 벌레 먹듯 잔뜩 파헤쳐져 잠시도 속도를 높일 수 없다. 비포장도로가 오히려 속도 내기엔 낫지만 그마저 곱게 깔려있지 않아 차는 계속 요동을 쳐댄다.

일행을 태운 사륜구동의 SUV는 진짜 오프로드를 체험하며 8~10시간을 달린다. 차창 밖 자연의 풍경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모습이다. 사자 기린 코끼리 등은 없다. 대신 그곳에 터를 닦고 사는 원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 펼쳐진다. 숙연하게 생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차라리 세트장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삶의 터전들이다. 나무기둥과 풀잎만으로 비바람을 피할 집을 짓고 사는 그들이다. 뿌연 흙탕물을 길러 다니는 아낙, 우마차를 타고 제부(zebuㆍ마다가스카르의 소)를 모는 장정, 차 소리에 반갑게 뛰어나와 손을 흔드는 아이들.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표정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이따금 길가의 여인들 몇몇은 얼굴에 팩을 바르고 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진흙을 바르고 다니는 건가 가이드에 물었더니 나름 자신들만의 피부관리법이란다. 카나프레이 같은 나무를 가루 내고 거기에 돌가루와 물을 버무려 팩을 만들어 쓴다. 사용하는 나무에 따라 색이 다른데 노란색 팩은 살결을 부드럽게 하고, 하얀색은 피부를 밝게 하고, 갈색은 색을 짙게 해준단다. 그들도 얼굴에 관심 많은 천상 여자였다.

칭기에 가기 위해선 치리비이나와 마남볼로라는 이름의 강 2개를 건너야 한다. 포장된 길이 없는 것처럼 강을 건너는 다리도 없다. 허름한 포구에 이르면 차들은 페리를 기다린다. 좁고 긴 모터보트 2대를 잇고 그 위에 넓은 나무판을 얹어 만든, 페리라기 보다는 모터 달린 뗏목에 가까운 배다. 일일이 손으로 배를 옮겨가며 차를 태울 공간을 마련해내는 그 노력이 가상했다.

검은 벨벳을 깐 하늘 위로 은하수가 길게 가로지른 밤이 되어서야 200km를 달려 칭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숙소에 이르렀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칭기로 향했다. 한 시간 반의 오프로드 드라이브 끝에 칭기 입구에 도착했다. 차를 세운 가이드는 카라비너(등산용 금속고리)가 달린 보호장구 하나씩을 내주었다. 각자 최소 물병 2개씩은 준비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이제부터 4시간의 트레킹. 손에 쥔 카라비너엔 벌써 긴장의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 초원을 가로질렀다. 수풀이 나타났고 고마운 그늘 속에 몸을 들이밀 수 있었다. 무성한 수풀 속 기묘한 바위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칭기의 바위들이다. 제주의 현무암같기도 하고 삼척 동굴 속 종유석 같기도 한 모양이다. 짙은 회색의 바위는 날카로운 단면으로 잘려있다.

숲길의 끝 마침내 칭기의 거대한 바위평원이 나타났다. 설악산의 울산바위같은 느낌이다. 단 화강암이 아닌 석회암이다. 비와 바람이 깎아낸 바위들이다. 바위의 끝은 모두 칼날 아니면 바늘이다. 현지어로 칭기는 ‘발끝으로 걷다’란 뜻. 실제 칭기의 바위를 헤집고 다닐 때는 발끝으로 걸어야 했다. 예전 처음 이곳을 찾은 인류는 석회암 덩이가 품은 동굴에 몸을 의탁했다고 한다. 칭기의 동굴은 지금도 신성시되는 공간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칭기 탐험이다.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다. 칼날같은 바위를 잡고 그 칼날 위로 걸음을 옮겨야 한다. 수직의 벼랑을 쇠줄에 카라비너를 걸고 올라야 했고, 비좁은 바위틈은 낮은 포복으로 통화해야 한다. 랜턴으로 불을 밝히고 긴 동굴을 지나 가파른 벼랑을 한참 올라가니 칭기 평원의 정상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돌탑들이 발 아래다. 유럽의 고딕성당들의 첨탑들을 다 모아놓은 느낌이다. 바늘의 성, 칼날의 궁전이다.

또 다른 뷰포인트로 가는 길에 협곡을 건넌다.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사이를 출렁다리가 잇고 있다. 다리의 쇠줄에 카라비너를 걸고 걷는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다리가 출렁인다. 끝 모를 바닥 추락의 공포로 다리는 후들거리고, 시야를 꽉 채운 돌탑들의 향연엔 가슴이 쿵쿵거린다. 스릴과 환희가 동시에 온 몸을 휘감았다.

칭기(마다가스카르)=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바오밥, 생명의 물 품고 천년 버텨

마다가스카르는 섬이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남극대륙 호주대륙 등이 한 땅덩이로 붙어있던 고(古)대륙 곤드와나(Gondwana)일 때 마다가스카르는 그들과 붙어있던 대륙 한가운데의 조용한 평원이었다.

곤드와나에 균열이 생기면서 6,500만년 전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떨어져 나왔고 인도양 한가운데 외로운 섬으로 남아야 했다.

세계의 많은 섬들은 화산 폭발로 생겨났다. 마다가스카르는 이와 달리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섬이다. 그 땅의 시간이 대륙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래된 땅이다. 하와이나 제주도 같은 화산섬이 무에서 시작된 섬이라면, 대륙성 섬은 떨어져 나올 때 대륙의 생명도 함께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대륙과는 별개로 자신만의 진화과정을 겪는다. 고립과 은둔으로 버텨온 그 시간이 수천만 년이다.

마다가스카르는 그 땅의 역사가 오래고, 땅덩이도 큰 데다, 열대 지역이라 식생이 번성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고스란히 태고의 원시 자연을 담아낸 섬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 로보타손씨는 “마다가스카르는 섬이라기 보다 대륙의 미니어쳐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에 20만종의 식생이 사는데 이중 80%는 마다가스카르에만 사는 종”이라고 했다. 이곳의 동물이나 식물 한 종이 사라지면 그건 지구 전체에서 멸종되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오묘한 자연을 대표하는 식생이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다. 바오밥나무의 종류는 모두 8종. 이중 6개 종은 마다가스카르에만 있다. 아프리카와 호주에서 발견된 다른 2개 종 또한 마다가스카르에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모론다바에서 만난 바오밥은 그 크기가 최고 30m에 이르고 직경은 7.5m에 달한다. 그 정도로 자란 것의 수명은 천년 이상으로 보고 있다. 나무 껍질은 밧줄이나 지붕으로 쓰이고, 잎은 가축의 먹이로 사용된다. 바오밥 애비뉴를 걷다 죽어 쓰러진 바오밥이 있어 살펴봤다. 나무토막 하나를 들어보니 황태포를 든 것마냥 가벼웠다. 이 연약함으로 어찌 천년을 버텨온 걸까. 현지 가이드는 바오밥의 재질은 단단한 목질이 아닌 섬유질과 같다고 했다.

바오밥은 대지의 수분을 저장하는 물탱크 역할을 한다. 바오밥이 자라는 곳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고, 간헐적으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땅이다. 물이 많을 땐 차고 넘치고, 없을 땐 숨쉬기 힘들 정도로 메마르다. 바오밥은 비 왔을 때 빨아들인 그 수분으로 지독한 가뭄을 지낸다. 섬유질의 몸체가 구멍 숭숭 뚫린 스폰지처럼 물을 쉽게 빨아들여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단단함을 버리고 유연함을 선택했기에 물을 구할 수 있었고 천년 이상의 생명도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땅이 품지 못하는 물을 대신 지켜온 바오밥은 생명의 통이다. 그렇게 지켜온 천년이다.

모론다바=글ㆍ사진 이성원기자

■ "나를 길들여 봐" 또 하나의 명물 여우원숭이 리머

바오밥이 마다가스카르를 상징하는 식물이라면 동물의 대표는 여우원숭이다. 영어로는 리머(Lemur), 현지어는 마키(Maki)다. 마다가스카르에만 있는 동물로 수십종이 있다. 여우원숭이는 영장류에서도 원원류(prosimian)에 속한다. 원숭이 이전 단계의 영장류인 셈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다가스카르에는 대형 육식 포유류가 없다. 먹을 거리도 지천이다. 여우원숭이들의 낙원이다. 섬 전역에 퍼져 나간 여우원숭이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모론다바 인근 키린디 국립공원에서 많은 여우원숭이를 볼 수 있다. 시파카(Sifaka)와 갈색 리머(Brown Lemur)가 쉽게 눈에 띄었다. 워킹 사파리를 통해 그들이 사는 나무 밑 가까이 갔지만 좀체 도망갈 기색이 없다. 적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업은 시파카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듯이 뛰어넘어 다녔고, 갈색 리머는 멀뚱멀뚱 이방인을 쳐다보며 한낮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유명한 여우원숭이로는 가장 큰 덩치의 인드리(Indri), 대나무를 먹고 사는 뱀부 리머(Bamboo Lemur), 꼬리가 길고 예쁜 알락꼬리여우원숭이(Ring tailed Lemur), 작고 깜찍한 아예아예(Aye-Aye) 등이 있다.

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마다가스카르는 그린랜드, 파푸아뉴기니, 보르네오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남북의 길이가 1,600km다. 면적은 남한의 6배에 이른다. 수도는 중앙고원에 있는 안타나나리보. 공용어는 프랑스어고 지방에선 현지어인 말라가시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마다가스카르에 인류가 들어온 건 2,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 쪽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남인도, 중동, 아프리카 대륙 등에서 사람들이 건너왔다. 유럽인으론 15세기 포르투갈 선단이 제일 처음 닿았고 이후 영국 네덜란드의 선원들이 섬을 찾았다. 17세기에는 희망봉을 돌아나가는 선단을 공격하는 해적들의 소굴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1896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가 1960년 독립했다. 인구는 2,000만명.

섬 전역이 열대권에 속해 바닷가는 일년 내내 덥다. 수도 안타나나리보(줄여서 타나)가 있는 고원지역은 고도가 높아 겨울엔 서늘하다. 건기는 5~10월, 우기는 11~3월이다.

통화는 아리아리(AR). 최근 환율은 미화 1달러에 2,000 아리아리 정도다. 전기는 220v.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항공은 방콕을 경유해 들어간다. 에어 마다가스카르가 1주일에 2번(화, 토) 방콕-안타나나리보 구간을 운항한다. 에어 마다가스카르 한국 사무소 (02)3708-8531

마다가스카르 여행은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인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를 통해 상담 받을 수 있다. (02)775-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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