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에게도 꿈이란 게 생겼어요.”
마냥 부러웠다. 또래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체육시간에 공을 찰 때,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친구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여겨졌다. 적어도 박찬진(20ㆍ감리교신학대 1년)군에게 고등학교 입학 직전까지 남겨진 학창시절의 기억은 그랬다.
“어렸을 때요? 좋았던 적이 별로…. 늘 혼자였으니까요.” 언제나 외톨이였기에, 사춘기 시절 그렸던 그의 그림 일기는 대부분 1인극으로 엮어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부모님과 헤어지면서부터 꺾어진 그의 인생 굴곡은 이미 정해진 수순으로 보였다.
▦불우했던 가정 환경
그에게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정 불화로 부모님이 집을 나간 이후, 동생 2명과 함께 할머니(80) 집(충남 아산)으로 보내졌다. 한창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할 무렵, 자세한 영문도 모른 채 겪어야만 했던 부모님과의 생이별은 12살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고난은 시작됐다. 7평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당장 먹고 사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수입이라곤 인근 교회에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몇 십 만원이 전부였다(현재도 박군 가족은 정부 생활보조금 등을 합쳐 약 100만원의 수입으로 살고 있다). 네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장래 희망이나 꿈 같은 것은 그에겐 사치였다.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성격도 차츰 내성적이면서 거칠게 변해갔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을 주변 환경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갑자기 제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마저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학교 아이들과 싸움도 많이 했어요. 사실, 대부분의 싸움이 제가 먼저 시비를 걸면서 시작됐습니다만. 할머니만 고생하셨죠.” 지난 날들이 스쳐지나 가듯, 그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달리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그가 다녔던 인근 교회의 초등학생 전용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밀려났다. 좌절과 절망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런 날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계속됐다.
▦우연히 찾아온 인생의 전환점
탈출구가 없어 보였던 그에게 인생 터닝 포인트가 발견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1986년부터 단 돈 1,000원으로 시작해 다섯 개의 탁아방을 후원하던 부스러기사랑나눔회(옛 부스러기선교회)는 ▦아동중심 ▦현장중심 ▦후원가족 중심의 원칙 아래 불우한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시민단체. 이 단체가 SK 및 보건복지가족부, 교육과학기술부가 함께 손잡고 그가 살고 있던 지역에 13~18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립한 지역아동센터 ‘1318해피존’에 들어간 것. 그의 교회 담임 목사가 1318 해피존 운영자에 선임됐던 탓에, 그도 자연스럽게 이 곳으로 인도됐다. 이 곳에서 그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그는 서서히 본래 천성을 되찾아 갔다. 밤 늦은 시간까지 선생님과 함께 공부는 물론, 문화활동도 하고 저녁식사까지 제공받은 것. 박군에겐 또 하나의 가족을 얻은 것과 같았다.
“그 곳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나도 뭔가 하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났습니다.”
인터뷰 초반, 우울했던 그의 얼굴에는 조금씩 홍조가 나타났다.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건강한 자립을 위해 학습과 정보, 문화 및 정보기술(IT) 교육, 급식제공 등이 지원되는 1318해피존은 2006년부터 SK가 총 106억원을 투입, 현재 전국에서 34개가 운영되고 있다.
도전의식과 자신감도 생겨났다. 1318해피존을 접한 이후, 전교 150등이었던 그의 고교 성적은 20등까지 치솟았다. 1318해피존에서 진행했던 ‘도전 잉글리쉬 업’ 프로그램에선 우수한 성적을 거둬 해외 연수까지 다녀오기도 했고, 불 붙은 학구열로 대학 진학까지 이뤄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꿈이란 게 생겼다는 사실이다.
“큰 집을 지을 겁니다. 따뜻한 정이 그리운 친구들이 언제든 마음 놓고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그런 쉼터를 만들고 싶거든요. 그리고 누구나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알려줄 생각입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선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 가수 션, 차상위계층 아동에 매년 1억원씩 장학금
"우리 꿈동이들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다면서요?"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가수 션(본명 노승환ㆍ38)씨의 첫 마디는 기부에 관한 그의 특별한 철학을 함축하고 있었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아내인 배우 정혜영(37)씨와 저소득층 가정 자녀 등 100명의 초등학생에게 월 10만원씩을 후원하고 있는 그는 이 프로젝트를 "꿈동이 아이들 지원"이라고 표현했다. "불쌍해서 도와 주는 게 아니라 잘하리라 믿기 때문에 장학금을 주는 것이니까요."
꾸준한 나눔 실천으로 '나눔 전도사' '기부 천사'로 불리는 이들 부부는 둘째인 아들 하랑이를 임신한 2007년부터 홀트아동복지회와 인연을 맺었다. "아이가 내 이웃 모두가 큰 의미의 가족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홍보대사를 맡은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꿈동이'들을 직접 돕기로 했다는 것.
특히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실질적인 나눔 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 컸다"는 그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은 차상위계층 가정의 자녀 등을 추천 받았다. 그는 그 중 선발한 배움에 열의가 있는 100명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음악, 미술 등 특기 교육을 비롯한 교육활동에 지출되는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먹을거리가 부족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부족한 아이들도 도와야 할 이웃이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생각했어요."
후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여름방학마다 '신나는 여름방학 리더십 캠프'를 여는 것도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기 위해서다. 캠프 참가로 어린이들이 개학 후 학급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7월 충남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열린 올해 캠프 현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장기자랑 시간에 그간 배운 실력을 뽐내고 싶어 낑낑대며 서툴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도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저도 배운 게 참 많아요.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맑은지 느낄 수 있었죠."
올해는 참가 인원도 부쩍 늘었다. 그가 소속된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도 그의 제안으로 올해부터 100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어서다. 지난해에 이어 1억원을 내놓은 션, 정혜영 부부와 교회가 기부한 1억원으로 200명의 어린이가 새로운 꿈을 키울 기회를 얻게 됐다.
그는 이처럼 홀트아동복지회와 같은 단체를 통해, 또는 개인적으로 끊임 없이 기부와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배경을 묻는 질문에 "나눔과 기부는 삶의 일부분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나눔 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분은 없어요.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해야지, 라고 미루는 분이 많아 그렇죠. 하지만 나눔은 크고 작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100원이든 1억원이든 매일 어떻게 우리 삶 속에 녹여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주지 않고 마음에 품고만 있다면 어떻게 전달이 되겠어요."
그는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해 기부를 망설이기보다 용기 있게 이웃을 돕고, 그렇게 용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가 꿈꾸는 더불어 사는 삶이다.
"제가 돕는 100명의 아이들이 이렇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꿈을 갖고 자라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게 될 때 이 아이들로 주변이 따뜻해질 걸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요. 금액의 크고 작음에 관계 없이 나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세상이 될 겁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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